‘기상청 사람들’ 책임지는 탁월한 주인공의 모습 보여준 박민영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많은 시청자들의 예상과 달리 JTBC 주말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은 주인공들의 원톱 로맨스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하경(박민영)과 이시우(송강)의 비밀 사내연애는 드라마의 중심이긴 하지만, 그게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드라마는 기상청과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맑음과 흐림을 거듭하는 우리의 일상사를 들여다본다.

은근 빌런들도 등장하지만, 그래도 <기상청 사람들>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구성이기는 했다. 또한 주인공 진하경의 분량이 예상보다 적어서 주인공의 존재감까지 흐릿해질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배우 박민영은 마지막까지 그런 진하경의 존재감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박민영은 <기상청 사람들>에서 일과 사랑, 가족과 직장에서 미묘하게 치이는 커리어우먼의 캐릭터를 굉장히 미묘하게 잘 잡아냈다. 이미 그녀는 tvN 로맨틱코미디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이미 개인비서 김미소를 통해 커리어우먼 연기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박민영은 <기상청 사람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실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 김미소는 진하경보다 훨씬 더 극적인 요소가 많은 캐릭터다. 반대로 진하경은 총괄예보관이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인물인 동시에 직장여성의 평범한 성격도 많이 담겨 있다. 자칫 심심하게 연기하면 되게 심심해질 위험이 있는 인물이다. 반대로 로맨스든 직업적인 면이든 한쪽 면을 너무 과장해서 연기하면 다른 부분이 무너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박민영은 진하경을 너무 과하게 연기하지 않으면서도, 이 캐릭터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박민영은 배우 특유의 또렷한 발음과 그 발음을 유지하면서 미묘하게 말투를 조정하는 능력으로 인물의 입체적인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사실 박민영은 <기상청 사람들>에서 젊은 배우들이 자기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빤한 생활 연기를 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는 잔잔한 생활연기처럼 보이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계산된 연기인 것이다.

일단 박민영의 진하경은 기상청 총괄예보관이라는 전문적인 직업에 어울리는 말투로 연기를 한다. 그렇기에 진하경은 일단 무섭지만 능력 있는 직장 상사 같은 냉철하고 이지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특히 총괄예보관이기에 어려운 용어들을 일상용어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부서를 책임지는 진하경의 모습은 그녀의 일면인 뿐이다. 진하경은 대변인실 통보관 한기준(윤박)과의 사내연애에 실패하고, 연하의 이시우 특보와 다시 사내 로맨스를 쌓아간다. 이 로맨스에서는 직장 상사로의 모습과 살짝 결이 달라진다. 현재의 연인인 이시우와의 관계에서 진하경의 냉철한 목소리는 적절하게 혀가 짧아진 말투로 변한다. 이게 너무 과하면 코믹하고 유치한 로맨스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박민영은 사랑에 빠진 여성의 자연스럽게 ‘귀여운 척’하는 느낌의 말투를 센스 있게 살려낸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만한 그런 귀여운 척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식으로. 반면 한기준과의 대화에서는 말투가 또 달라진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한기준과의 대화에서의 말투는 이미 서로 많은 것을 아는 사람과의 덤덤하고 무심하면서도 편한 말투를 보여준다. 또 가족과의 대화에서는 또 미묘하게 다른 식이다.

이처럼 박민영은 그리 과하게 연기하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말투의 변주로 진하경이란 캐릭터의 다양한 면을 부각시킬 줄 안다. 그리고 격정적인 감정이나 슬픈 감정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대사에 힘을 싣는 대신, 눈빛이나 표정으로 채워나간다. 여기에 다른 또래 배우들에 비해 굉장히 울림 있는 내레이션들로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사실 <기상청 사람들>에서 박민영은 주인공으로 결코 과하게 본인에게 포커스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 덕에 <기상청 사람들>의 엄동한(이성욱) 선임의 가족 이야기를 비롯한 기상청 사람들의 수많은 사랑과 인생 이야기가 묻히지 않는다. 충분히 주인공 캐릭터를 드러내지만,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를 밀어내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사실 박민영의 연기는 ‘강강강 연기’와 ‘강강강 서사’를 좋아하는 일반적인 대중의 기호와는 살짝 결이 다를 수가 있다. 미니멀하고, 섬세하고, 다소 느린 방식으로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 MBC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데뷔한 이 배우는 <기상청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드라마를 책임지는 30대의 탁월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줬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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