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몰아치는 ‘기상청 사람들’ 속 쾌청 커플 돋보여

[엔터미디어=정덕현] “태풍이 발생하는 원인은 지구가 자전을 반복하면서 생긴 열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 태풍이 당장은 우리를 힘들게 할지 모르나 길게 보면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존재란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이겨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진하경(박민영)은 태풍에 빗대 우리네 관계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갈등이 생기고 때론 태풍처럼 폭발하기도 하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낼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유익한 거라는 것.

이것은 <기상청 사람들>의 작가가 드라마를 끌고 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면서, 인간관계를 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선영 작가는 ‘드라마는 갈등’이라는 정석적인 문법으로 드라마를 그려나가고 있지만, 그 갈등은 파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해결점을 위한 것이다.

진하경과 이시우(송강) 사이에 놓인 태풍은 평생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아버지 때문에 결혼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시우의 비혼주의다. 아들이 일하다 다쳤는데, 병원을 찾기보다 기상청을 찾아와 난데없이 보상만을 요구하며 싸우려 드는 아버지. 진하경은 그를 직접 겪어보면서 이시우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이시우에게 말한다. 그런데 상황은 묘하게 흘러간다. 두 사람의 사내연애가 공공연히 알려지면서 헤어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

채유진(유라)이 이시우와 동거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하며 이를 추궁하는 한기준(윤박)의 찌질함에, 채유진이 집을 나와 제주도 본가로 내려가자 한기준은 그를 찾아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다. 그 소리에 채유진의 새 아빠가 나서 한기준을 몰아세우고 채유진은 저도 모르게 아저씨라 부르던 새 아빠를 “아빠”라고 부른다. 묘하게 상황이 얽혔지만, 태풍처럼 몰아친 갈등의 폭발 끝에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오래도록 기상청 일로 떨어져 지낸 탓에 소원해진 엄동한(이성욱)에게 아내 이향래(장소연)는 급기야 이혼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렇게 끝으로 몰린 엄동한은 세 달 간의 유예기간을 갖자고 하고는 그제서야 가족과 가까워지려 노력한다. 기상청 체험학습을 온 딸 엄보미(이승주)는 아버지의 일을 이해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런 딸을 보며 이향래의 마음도 움직인다.

꿈이라며 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해온 오명주(윤사봉)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남편을 보고는 복직을 할 건지, 이혼을 할 건지 아니면 죽어라 공부를 할 건지 셋 중에 선택하라 한다. 회사 일에 육아에 지친 오명주의 태풍 같은 선언에 남편은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기상청 사람들>이 보여주는 관계들은 갈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열대야처럼 숨을 턱턱 막히게도 하고, 때 아닌 이상기온으로 봄날인 줄 알았던 관계에 한파를 몰고 오기도 하며 급기야 태풍이 되어 그 갈등의 에너지들이 폭발하기도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처럼 이 드라마 속 인간관계도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는 갈등과 불안을 담는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쾌청한 관계를 담고 있는 신석호(문태유)와 진태경(정운선)의 러브라인이 유독 눈에 띄며 사랑받는다. 엄마가 시켜 동생 진하경네 집에 김치를 가져다주려 왔다가 위층에 사는 신석호와 우연히 마주친 진태경은 그림책 동화작가. 물론 두 사람의 인연도 갈등으로 시작한다. 진태경이 쓴 ‘도시악어’를 읽은 신석호가 악어 뒷발가락이 네 개라며 악어에 대해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썼다는 이야기를 해 상처를 준 것.

이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그러나 진태경이 다음 동화 소재로 생각하는 펭귄을 신석호 또한 너무 좋아한다며 그 과학적 정보를 알려주면서 가까워진다. 일종의 취재를 하는 시간이지만, 이과생으로서 과학지식을 뽐내려는 신석호와 그런 지식 자랑을 싫어하지 않고 신기해하며 들어주는 진태경이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 것. 이미 예고된 것이지만 진태경에 점점 빠져든 신석호는 일에만 빠져 살면서 빈틈없던 그 모습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태풍 속보창에 진태경이 보낸 펭귄 캐릭터를 잘못 업로드하는 실수를 한 것.

“아무래도 난 안될 것 같아요. 태경 씨랑 만나는 거요. 제가 원래 한 가지 이외에는 집중을 잘 못하거든요. 근데 태경 씨랑 만나고 나서부터 자꾸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되고 있어요. 근데 그러면 안 되거든요. 기상청이란 데는.” 원래는 우선순위가 기상청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진태경이 됐다는 이 이야기는 사실상 사랑고백이다. 그 이야기를 듣던 진태경이 신석호에게 과감하게 입맞춤을 하고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태풍이 몰아치는 <기상청 사람들>의 날씨에 잠시 쾌청한 햇살을 만든다.

최근 들어 멜로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로맨틱 코미디 본연의 색깔을 더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갑갑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어, 멜로드라마에서조차 무겁거나 고구마 가득한 이야기만을 보길 원치 않아서일 게다. <기상청 사람들>은 물론 태풍 같은 갈등들이 그려지지만, 그걸 담는 방식은 너무 무겁지만은 않은 코미디의 기조를 섞고 있다. 한기준 같은 캐릭터를 단지 악역이 아니라 너무 찌질해 어딘가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캐릭터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진태경과 신석호라는 두 인물은 사실상 이런 무거움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묘하게 얽혀가는 관계의 진전은 이 드라마에서 도드라지는 면이 있다. 물론 그런 관계의 변화 역시 저 예상할 수 없이 돌아가는 날씨처럼 변화무쌍하게 이뤄진 것이지만, 연속되는 갈등 속에서 잠시 웃게 해주는 이 쾌청 커플에 시청자들의 기분도 좋아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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