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진상 캐릭터들의 먹구름 속 멜로의 화창함이 그립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래 이게 당신한테 어떤 기횐데 그치? 그래서 이번엔 그 돈으로 또 뭐할 건데? 노름? 사기도박? 여자? 대체 이번엔 또 뭐? 쪽팔린다고 당신! 그러니까 제발 좀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이시우(송강)는 아버지 이명한(전배수)에게 그렇게 일갈했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았다. 당신이라고 지칭했고 쪽팔리니 꺼지라고 외쳤다. 패륜처럼 보이지만 앞뒤 사정을 보면 이시우의 이런 말과 행동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아버지라고는 해도 진상이 이런 진상이 없기 때문이다.

시우가 어릴 때는 그를 여관 밖에 놔두고 하루 종일 도박을 하는 그런 인간이고, 시우가 나이 들어 일할 때는 전화해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인간이다. 제주도에 파견을 나갔다 폭발사고로 눈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아버지라면 먼저 달려가 몸 걱정이 우선이어야 하지만, 이 인간은 뜬금없이 기상청을 찾아와 보상을 요구하며 난장을 벌인다. 결국 보다 못한 진하경(박민영)이 이를 막기 위해 함께 제주도행을 제안하고 아들이 입원한 병실을 찾았지만 거기서도 이 인간은 “적어도 3천만 원은 받아야” 한다며 행패를 부린다.

이시우가 진하경과 달달한 사내연애를 하면서도 비혼주의라는 걸 버리지 못하는 건 이런 인간 같지 않은 아버지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런 아버지와 가족으로 얽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관계를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엔 절대로 안되는 게 있어요. 사람이 태풍의 경로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나와 우리 아버지 관계도 그래요.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요. 당신이 당신인 것처럼 나도 나일 수밖에 없다고요. 나한테 생각해보라고 했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난.” 결국 이시우는 이 일을 겪으며 결심한다. 진하경과 헤어지기로.

<기상청 사람들>은 애초 진하경과 이시우의 달달한 멜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상은 매회 만만찮은 갈등들로 채워져 있다. ‘사내연애 잔혹사’라는 부제가 그 사내연애라는 특별한 관계가 야기하는 어려움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시우와 그의 아버지 같은 도무지 개선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진상 캐릭터의 등장은 이 ‘잔혹사’가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이처럼 <기상청 사람들>은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이른바 ‘진상 캐릭터’를 주로 활용한다. 처음에 그 역할은 진하경을 배신하고 채유진(유라)과 결혼한 한기준(윤박)이 맡았다. 그는 결혼까지 파혼한 데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뻔뻔하게도 제 돈이 얼마 들어가지도 않은 아파트의 분할을 요구하는 인간이다. 은근히 사내에서 계속 마주쳐 진하경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협박하면서.

게다가 결혼한 후에는 아내 채유진이 이시우와 동거했다는 사실로 찌질하게 아내를 몰아세우는 진상 짓을 한다. 결국 그런 진상 짓의 끝은 별거다. 채유진은 집을 나와 잠시 휴가를 내고 제주도 본가로 내려간다. 한기준은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다시 채유진의 마음을 돌릴까를 고민한다.

기상청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보니 서먹함을 넘어 냉랭한 관계가 되어버린 엄동한(이성욱)과 그의 아내 이향래(장소연) 그리고 딸 보미(이승주) 가족 이야기도 그렇다. 이향래가 그간 홀로 지내며 겪은 고통과 상처는 이해되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엄동한의 잘못으로 몰아가고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어딘가 엇나간 느낌을 준다. 진상 캐릭터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이향래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안기는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드라마 전면에 출연하고 있진 않지만 오명주(윤사봉)의 남편 역시 진상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루 종일 가장으로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오명주가 퇴근해서도 아이들과 전쟁 같은 육아의 시간을 보낼 때 이 남편은 아랑곳없이 쓰러져 잠만 자고 있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꿈(?)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마치 벼슬이나 되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기상청 사람들>은 여러 날씨의 현상들을 가져와 인간관계를 은유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성질의 기단이 마주쳐 발생하는 기후변화가 자주 등장하고, 그걸 은유하는 인간관계도 주로 갈등이 부각된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주로 극단화된 진상 캐릭터에 의해 주도된다. 진하경과 이시우의 달달했던 멜로가 비혼주의라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이명한 같은 진상 캐릭터에 의해 태풍으로 돌변한 것.

결국 드라마는 갈등이라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일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상청 사람들>이 매회 날씨에 은유된 다양한 관계의 갈등 양상들을 보여주는 건 그만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 갈등이 특정 ‘진상 캐릭터’에 의해 그려지고 있고, 어떤 해법이나 해소가 아닌 갈등 자체에 주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부분은 자칫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답답하고 어둡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먹구름이 몰려오고 태풍이 몰아쳐도 다시금 햇살이 나오는 날이 온다는 걸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시청자들은 진하경과 이시우에게도 화창한 날이 오기를 바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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