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박민영, 냉정한 듯 뜨겁고, 완벽한 듯 인간적인

[엔터미디어=정덕현] 사내연애는 그 공적 공간 속에서 벌어진 사적인 연애라는 점에서 특별한 지점이 생겨난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이라는 색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사내연애 잔혹사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잔혹사’라 굳이 붙인 이유가 첫 회 만에 진하경(박민영)이 결혼을 앞두고 겪은 파경 이야기로 제시된다.

즉 공개 사내연애를 했고, 그래서 결혼발표까지 했던 진하경이 상대인 한기준(윤박)에 의해 철저히 배신당하는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한기준은 기상청 출입기자인 채유진(유라)과 바람을 피웠고, 결국 들통 난 후에는 그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진하경은 기상청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와중에 회사를 다녀야 하고, 심지어 한기준은 물론이고 채유진과도 계속 마주쳐야 한다. 이러니 잔혹사일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진하경 앞에 이시우(송강)가 나타나고 그 역시 채유진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로 인해 같은 경험을 토로하다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시우가 같은 부서로 오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진하경은 심란해진다. 또 사내연애? 그 잔혹사를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비밀연애를 한다. 드러나는 순간 헤어지는 것이라 전제하면서.

<기상청 사람들>은 매회 시그널, 체감온도, 환절기, 가시거리, 국지성 호우, 열섬현상 같은 부제로 기상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들을 기상상황에 은유해 풀어내는 드라마다. 그런데 그 관계 중에서도 <기상청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사내연애다. 진하경과 이시우가 하는 비밀 사내연애도 있지만, 이제 결혼까지 한 한기준과 채유진이 사실은 싸우고 나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안 좋지만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없어 애정을 가장하는 사내연애(?)도 있다.

진하경과 이시우의 사내연애가 재미를 주는 건, 이들의 사적인 달달함이 공적인 공간에 왔을 때는 냉담한 팀장과 부하직원의 관계로 돌변하는 그런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에 있다. 진하경은 일부러 이시우를 못살게 구는 것처럼 과장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탕비실에서 두 사람만 있을 때는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는 이시우를 밀어내면서도 좋아한다. 이 부분에서 박민영의 연기는 무르익었다는 표현을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결들을 쥐락펴락하며 보여준다.

사내에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진하경이라는 인물을 박민영은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똑 부러지는 모습으로 그려내지만 동시에 한기준의 배신에 아파하고 이시우와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뜨거움 또한 보여준다. 일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서 거침없이 하고픈 말을 하는 진하경에게서 시원한 ‘사이다’가 느껴지지만, 이 인물은 그렇다고 비정한 캐릭터가 아니다. 사적인 상황들이 벌어질 때 여지없이 허술하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배어난다.

박민영은 멜로에 있어서 냉정한 듯 뜨겁고, 완벽한 듯 인간적인 면을 오가며 설렘과 슬픔, 달달함과 씁쓸함, 눈물과 웃음을 다 끄집어내는데 익숙한 배우다.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라는 남장여자 캐릭터에서도 그랬고, <김비서가 왜 그럴까>, <그녀의 사생활>에서도 로맨틱 코미디를 그가 얼마나 잘 소화하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물론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같은 절절한 멜로 연기도 빼놓을 수 없지만.

<기상청 사람들>이 그리는 사내연애의 묘미는 사내에서만 생겨나는 건 아니다. 우연히 모텔 앞에서 마주해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진하경과 이시우의 이야기가 그렇다. 외지에서 오랫동안 일해 가족과 가까워지지 못해 결국은 집을 나온 엄동한(이성욱)이 잔뜩 취해버려 어쩔 수 없이 진하경이 그를 모텔로 데려갔고, 마침 도박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돈을 찾아 그 모텔에 갔던 이시우를 만난 것이지만 그 상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텔에 간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이시우에게 진하경은 불안감을 느끼고 결국 사내연애를 그만두자고 말하고, 이시우는 그제서야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마침 진하경의 어머니가 과로로 쓰러지고 그것이 그의 아버지 기일 때문이라는 게 밝혀진다. 이시우는 도박중독자로 심지어 진하경에게까지 찾아와 돈을 요구한 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진하경은 사업실패로 비관해 자살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이시우를 보듬는다. 그러면서 진하경은 말한다. “혹시라도 네 마음이 변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줘.” 그는 아버지처럼, 한기준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는 것들이 고통스럽다.

이 부분은 진하경이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기상청에서 하는 일이 절묘하게 마주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일은 날씨를 예측하고 대비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지점은 이 드라마가 하고 있는 기상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가 다양한 기상상황으로 은유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진하경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서라는 걸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일과 사랑의 양면을 오고가며 멜로를 기상상황을 통해 그려내는 이 만만찮은 역할을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고 있는 박민영이 새롭게 보인다. 그의 멜로는 확실히 무르익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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