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대첩’, 연애부터 풍속, 정치, 추리까지 꽉꽉 채웠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혹자들은 로운의 ‘얼공’(얼굴공격)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 얼굴의 매력을 다채롭게 포착해내는 이 사극의 장면 하나하나가 눈호강을 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물론 그걸 부정할 수 없지만,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에는 그 밖에도 다채로운 재밋거리들이 넘쳐난다. 연애부터 흥미로운 조선의 풍속은 물론이고 긴장감 넘치는 정치와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까지 없는 게 없는 사극이다.

출중한 외모에 학식은 물론이고 그림과 악기에 능하고 심지어 의학까지 섭렵해 공주의 눈에 들어 부마가 되지만 혼롓날 공주가 사망해 홀아비에 출사도 못하는 처지가 된 심정우(로운). 울분이 쌓여 ‘울분남’이라 불리게 된 그에게 부마의 신분을 벗게 해줄 기회가 생긴다. 원녀(과부), 광부(홀아비)들이 넘쳐나는 현실을 명분삼아 세자의 혼례를 막으려는 역성 세력들과 맞서기 위해, 임금(조한철)이 이 문제를 해결하면 심정우에게 부마 신분을 벗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

심정우는 마침 원녀들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남산골의 늙은 아씨들’로 불리는 세 딸을 혼례시키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주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중매쟁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좌상집 며느리 정순덕(조이현)을 만나게 된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공조해 ‘늙은 아씨들’을 혼례시키는 과정과 더불어 두 사람 또한 마음을 주고 받는 달달해지는 멜로를 코믹 터치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이러한 멜로에 정치극과 추리극 같은 요소들이 섞여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원녀, 광부들의 혼례를 치르는 일은 세자의 간택을 가능하게 만들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임금의 정치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세자 대신 진성군을 세우려는 조영배(이해영)와 그 역성세력들은 세자비 간택으로 금혼령을 시행하는 것이 원녀, 광부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이를 막으려 한다. 또 신분을 빌려 쓰고 있는 여주댁은 살인누명을 쓰고 있어 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 또한 정치와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심정우와 정순덕이 함께 하는 연애 매칭과 추리가 정치극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연애 매칭을 마치 연애 리얼리티를 보는 듯한 연출방식으로 풀어낸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광부1호’, ‘광부2호’ 같은 지칭들이 등장하고, 매회 드라마 시작부분에 등장인물들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이나, 인물을 소개하는 자막 등이 그것이다. 이런 연출은 마치 연애 리얼리티의 조선시대판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특히 미술, 의상, 조명 등에 남다른 공을 들인 연출과 어우러져 ‘눈이 즐거운 사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물론 사극에 대해 엄밀한 관점을 갖고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이런 연출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퓨전사극으로서 좀더 다양한 시도에 열려 있는 시청자들이라면 반색할 수 있는 도전적인 연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조선의 청춘 남녀들이 연등 하나씩을 들고 나와 탑돌이를 하며 서로의 눈을 맞추고 어둠 속에서 밀어를 속삭이는 장면들은 미적인 연출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출사와 중매에 대한 각자 진짜 하고픈 꿈을 가진 심정우와 정순덕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또 청상부마와 청상과부인 그들이 광부, 원녀들의 사랑을 피어나게 하듯 운명에 맞서 자신들의 사랑도 피울 수 있을까.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퓨전사극이지만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명분과 실제, 운명과 개척,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 그리고 허구와 사실 등 다양한 대립항들의 대결구도가 주는 긴장감과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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