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남매’, 연애 반 가족애 반인 독특한 이 리얼리티의 감흥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빠 용우의 어린시절 사진부터 현재 파일럿이 된 멋진 모습까지, 앨범으로 함께 확인하는 시간. 모두가 비행기 앞에서 멋진 모습으로 선 용우의 모습에 환호성을 지를 때 여동생 주연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었다. 마치 우리 오빠 멋지지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뿌듯한 미소가.

JTBC ‘연애남매’ 3회는 드디어 출연자들의 직업이 공개됐다. 그런데 그 공개방식이 흥미롭다.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를 담은 앨범을 함께 보고, 마지막에는 혈육이 써준 소개서를 읽는 방식이다. 여러모로 이진주 PD의 전작이었던 ‘환승연애’에서 헤어진 X를 편지형식으로 소개하는 대목이 떠오르는 이 장면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남매이기에 더 절절하고 끈끈한 소개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용우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어린 시절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오히려 책을 보며 스스로 위로할 정도였으니까요....” 혈육 주연이 써준 소개서를 읽어 내려가며 용우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감정이 올라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려 하는 오빠가 눈물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자신도 놀랐다는 주연은 그 순간 오빠가 진짜 많이 힘들었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별 얘기가 아닌데 나 왜 이래 갑자기 고장났네..” 용우는 짐짓 자신의 이런 모습에 스스로도 놀란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이 평범한 문구를 읽는 용우의 마음을 건드렸고, 급기야 감정을 터트리게 만들었을까. 그는 편지에 쓰인 ‘용우는’이라는 문구에서부터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자신을 삼인칭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그 문구에서 “누군가 내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는 것.

그 순간 용우는 어린 시절 꾹꾹 눌러 놨던 어떤 느낌이 올라왔다고 했는데, 그건 늘 뒤로 숨긴 채 드러내지 않아서 누구도 모를 것 같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해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모님이 너무 혈기왕성하시고 그 당시에 또 조금 안 맞으셨던 부분이 있어가지고 조금 어려웠던 부분이 있죠.”

책 이야기로 주연이 소개서를 시작한 것 역시 부모님들이 부부싸움할 때 오빠 방에 들어가서 ‘어린왕자’를 처음 읽었던 그 기억을 떠올려서였다. 그 기억 속에서 용우는 9살 어린 동생 주연이 혹여나 이런 상황 때문에 그늘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좀 이렇게 아닌 척 하면서 주연이한테 조금 편한 그런 환경을 제가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너무 어려 가지고...”

주연은 용우가 책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할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용오는 그래서 주연에게도 책을 읽게 한 것일 터였다. “다른 것들 조금 시끄럽고 그럴 수 있으니까 차분하게 책 읽고 오빠 옆에서 좀 쉬다 가게.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책은) 마치 옆에 있던 장난감 중의 하나였던 거죠. 그때 같이 좀 있어 주고 그냥 그러는 게 누군가한테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용우 또한 당시에는 어린 아이였다는 게 그때를 담은 비디오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 주연은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었는데 용우는 어딘가 표정이 늘 어두웠던 것. 그래서 용우가 주연에게 안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려 했던 건 어찌 보면 자신 역시 당시에 갖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는 그것을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용우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아이가 성장해 이제 멋진 파일럿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닌다.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고 조심스레 밝히며 그렇다고 아버지를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이해한다고 말할 정도로 용우는 성장해 어른이 되었다. ‘연애남매’가 연애 리얼리티에 남매라는 콘셉트를 가져와 더해 놓은 건 이처럼 한 사람의 삶 그 자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까이서 봐왔던 누군가의 삶이 혈육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리얼리티랄까.

물론 ‘연애’라는 키워드가 들어가 있어 ‘연애남매’는 여타의 연애 리얼리티들처럼 남녀 간의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설레는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첫 만남의 시선이 교차되고 함께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하며 생겨나는 감정들이 보여진다. 그런데 여기에 ‘남매’라는 키워드가 가져온 가족애의 시선에 의해 담겨진 누군가의 삶이 더해지자 사랑은 좀더 거대하게 느껴진다. 그저 이성 간의 이끌림 정도가 아니라, 한 삶을 살아온 존재가 또 다른 삶을 만나는 과정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것일 게다. 그 사람 하나가 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 ‘연애남매’가 혈육의 시선으로 더해놓은 건 그것이다. 개인으로서 어느 순간에 포착된 누군가와의 만남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 전체를 담은 누군가와의 만남.

“아 그런데 어릴 때 그런 생각한 적 있어요. 오빠한테 너무 고마워가지고 내가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면 누나로 태어나서 잘 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주연이 그렇게 말하듯, 누군가 그곳에서 용오를, 아니 용오가 살아왔던 그 삶들 전체를 알아주고 토닥여주기를 아마도 시청자들 역시 바라게 됐을 게다. 연애만큼 센 가족애의 시선을 담은 ‘연애남매’의 독특한 감흥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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