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90년대 코드, ‘뭉쏜’과 ‘불꽃미남’이 갈리는 지점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복고 열풍은 언젠가부터 기시감이 있다. 새로운 트렌드인 듯 떠들지만 그렇게 잘 느껴지지 않는다.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유행이 돌고 돌아, 음악 드라마 영화 등 콘텐츠 영역에서 새로운 창작이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과거의 소스들을 재활용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경향이 잦아지면서 복고는 트렌드이지만 늘 있기도 한 모순의 개념이 돼버렸다.

예능에서도 복고는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과거 인기 프로그램 포맷을 재가공해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거 스타들을 섭외해 현재를 관찰하는 방식이 복고의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복고라고 해서 과거의 광범위한 연대가 부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예능의 복고는 1990년대에 집중돼 있다.

복고가 대대적으로 언급된 것은 지난해 MBC <놀면 뭐하니?>의 싹쓰리 프로젝트였다. <놀면 뭐하니?>는 현재 2000년대 한국형 R&B 부활 프로젝트인 MSG워너비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이에 앞서 싹쓰리를 통해 90년대 가장 활발했던 혼성 그룹을 되살리는 내용으로 최고 인기 예능 자리에 오르게 됐다.

현재 예능계를 보면 JTBC <1호가 될순 없어>처럼 전성기를 1980년대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 듯한 개그맨들의 80년대 코드가 중심이 된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이고 복고는 90년대 코드가 지배적이다. 인기 예능 중 하나인 JTBC <뭉쳐야 쏜다>는 90년대 농구붐의 주역들을 근간으로 그 시절 정서에 기대 펼쳐지는 스포츠 예능이다.

관찰 예능으로 들어가면 90년대 코드가 더 잦다. tvN <불꽃미남>은 차인표, 손지창, 신성우를 중심으로 김민종, 김원준 등 90년대 톱스타들의 반가운 근황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처럼 프로그램 전체가 90년대에 맞춰져 있는 경우를 벗어나 다른 관찰 예능들을 봐도 90년대 코드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장수 인기 관찰 예능인 <미운 우리 새끼>는 재미를 책임지는 핵심 멤버로 탁재훈, 임원희 ,이상민, 김종국 등 90년대 스타들이 활약 중이다. MBC 체류 예능인 <안 싸우면 다행이야>도 허재, 최용수, 현주엽 등 90년대 스포츠 스타들이 최고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요즘 예능의 90년대 코드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허재는 <뭉쳐야 쏜다>를 비롯해 JTBC <해방타운>에 고정 출연 중이고 <안 싸우면 다행이야>, tvN <업글인간>,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 다양한 관찰 예능에서 모셔가는 귀한 몸이 됐다.

오는 30일 시작되는 JTBC 새 예능 <세리머니 클럽>도 골프를 테마로 한 스포츠 예능이지만 중심인물은 90년대 한국 스포츠를 상징하는 박세리다. 90년대 코드는 주로 90년대 전성기를 이룬 스타들을 출연시켜 그 시절 추억과 현재의 근황에서 재미를 찾는 방식으로 현재 한국 예능을 관통하고 있다.

90년대 코드의 인기는 당연히 TV의 주시청층과 관련이 있다. 90년대 10대와 20대를 보내 그 시절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40~50대가 주시청층을 30대와 함께 분할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됐고 소비 여력도 강한 연령층이라 광고 수주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90년대 코드는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르고 있다.

90년대 코드가 인기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불꽃미남>의 경우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90년대 톱스타들의 출연과 근황 공개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시청률은 1%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 시간대가 평일 오후 7시대라 주시청층이 TV 앞에 최대한 모여 앉기는 좀 불리하기도 했지만 추억 자극에 비해 웃음거리 부족이 시청률 저조의 원인으로 봐야할 둣하다. 90년대 오빠들의 반가운 모습들은 이어지지만 예능이라면 웃음도 시청자들은 요구하는 것 같다.

앞서 종영한 MBC의 <쓰리박>도 비슷한 경우로 보인다.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등 90년대와 2000년대를 상징하는 세 메가 스포츠 스타를 한 프로그램 안에 모아 큰 화제가 됐고 그들의 근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웃음 코드가 적다 보니 시청률은 출연자의 이름값에 비해서는 부족한 수치에 머물렀다.

반면 <뭉쳐야 쏜다> 경우 타 종목 스포츠 스타들의 농구 적응기에서 발생하는 몸개그 등 웃음 기제가 풍성하다. <뭉쳐야 쏜다>에 출연 중인 허재, 안정환, 현주엽, 김동현 등은 웃음을 만드는 예능 개인 기량도 탄탄하다. <놀면 뭐하니> 싹쓰리는 이효리, <미운우리새끼>도 탁재훈, 이상민 등 확실한 웃음 사냥꾼들을 갖추고 있다.

90년대 코드는 주시청층의 관심 유발 효과가 남달라 현 예능의 핫아이템이 됐지만 예능은 결국 웃음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추억의 호소력이 웃음 장치들을 확보한다면 상승 동력이 강력한 것만은 분명해 보여 이 둘을 잘 갖춘 90년대 코드 예능의 후발 주자들의 등장과 성공 사례를 기대해 본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JT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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