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뭉쏜’, 성공한 농구예능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인기리에 방송된 JTBC 예능 <뭉쳐야 찬다>의 다음 프로젝트는 농구다. 지난 7일 첫 방송된 <뭉쳐야 쏜다>는 기존 핵심 멤버인 허재와 안정환이 선수와 감독 자리를 바꾸고 기존 선수들에 이동국, 현주엽 등이 가세해 농구에 도전한다. <뭉쳐야 찬다><뭉쳐야 뜬다> 원년 멤버인 김용만, 김성주, 정형돈, 안정환을 주축으로 한때 국가대표로 이름을 날리던 왕년의 엘리트 스포츠 스타들이 뭉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포인트는 아저씨였다. 과거 화려한 전적을 가진 이들이 친근한 동네 아저씨, 형처럼 다가와 티격태격하며 몸개그의 향연을 펼쳤다. 기본 40대를 훌쩍 넘어선 이들이 아저씨 문화와 궁합 좋은 조기축구회를 시작하면 겪는 일련의 코미디영화 같은 우당탕 성장스토리는 신선하며 매력적이었다. 이후 팀의 발전을 위해 점차 몸과 기술, 감각을 가진 갓 은퇴한 젊은 스포츠 선수들이 합세하면서 축구의 완성도와 승률은 높아졌지만 성장 서사는 다소 무뎌졌다.

재정비 후 돌아온 <뭉쳐야 쏜다>는 역시나 농구에 문외한인 아저씨들로 시작한다. 하지만, 몇 가지 난제가 있다. 농구는 뭉쳐야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 접점이 적은 마니악한 소재다. 스포츠 스타들이 푸근하고 귀엽게다가온 조기축구와 달리 수준급의 동호회 농구는 일반 아저씨라면 신체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종목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문화적 맥락과 전문성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까다로운 스포츠다.

우선 저변 차이가 크다. 한국 남자라면 세대불문 이런저런 이유로 해봤거나 관심을 가졌을 축구와 달리 농구는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다. KBL은 현재 한국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인기 없는 리그 중 하나고, 지난 20년 간 세계 수준, 아시아 수준에서 남녀 국가대표팀 모두 점차 멀어지며 관심 자체가 많이 떨어졌다. 이런 원인이자 결과 전 세대 남녀노소 아우르는 축구나 야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농구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 무드에 향수를 가진 특정 세대 남성에게 한정되어 있다. <뭉쳐야 쏜다>의 경우 출연진과 타깃 시청자층이 일치한다는 점이 신의 한 수로 작용할 개연성도 있지만, 기존 패키지여행, 조기축구와 비교했을 때 확장이란 측면에서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

무엇보다 이들이 도전할 동호회 농구는 다양한 세대와 접근성을 가진 조기축구와 달리 2000년대 초반에 형성된 팀을 중심으로 비교적 젊은 신체와 높은 운동능력을 요하는 꽤나 폐쇄적인 생태계다. 강한 체력과 사이즈, 운동능력은 물론이고 물리적 접촉이 잦으며, 점프와 퀵니스를 필요로 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크고, 기술적 기본기를 다지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해 신규 유입이 떨어지는 종목이기도 하다.

XTM <리바운드>, tvN <버저비터>, SBS <핸섬 타이거즈> 등 농구는 지난 10여 년간 예능에서 가장 많이 다룬 스포츠 종목 중 하나이지만 성공 사례는 첫 번째 농구 예능이었던 <우리동네 예체능>의 첫 번째 특집 이외에 찾기가 어려운 이유다. 현재성의 결여는 마이클 조던, <슬램덩크>, <마지막승부>, 연세대와 고려대, 허동택 트리오 등 찬란한 90년대 무드의 한 축을 이룬 향수를 대중적으로 퍼져나가지 못한 이유가 됐다. 야구나 여자배구처럼 스타플레이어가 활약하는 활성화된 리그를 갖지 못한데다, 추신수, 류현진, 박지성, 손흥민과 같은 세계 레벨의 선수가 아예 없다보니 ‘K-콘텐츠자부심에서도 동떨어져 관심의 군불이 지펴지지 않았다.

<뭉쳐야 쏜다> 또한 비슷하게 출발한다. 허나 농구에 대한 진지함이나 부활과 같은 당위를 앞세우지 않는다. 코치로 합류한 매직히포현주엽은 그의 방송 커리어를 열어준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프로스포츠 구단 감독임에도 군대보다도 귄위적으로 군림하며, 현대 농구와 스포츠의학의 발전과는 괴리된 비과학적이고 강압적인 코칭을 고스란히 보여준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려와 달리 친절하고 자상한 과외선생님이 되어 나타났다. 허재는 스스로도 여러 차례 말했듯 풀어놓고 맡기는 편인, 전술형 감독이 아니어서 그런지 당황스러운 초짜들의 향연에 넋을 잃으며 엉망진창 농구를 예능으로 승화시켰다.

이 기조가 계속된다면 <뭉쳐야 쏜다>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첫 번째 농구예능이 될 전망이다. 90년대 향수로 남아 있는 농구를 얼마나 현재성 있는 재미로 환원시킬 것인가, 접근성 떨어지는 종목의 까다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첫 스텝을 내딛었다. 다른 농구 예능이 내세운 멋, 부활, 승부보다는 즐거움이란 테마를 내세우고, 농구 구력이 없는 출연진이 뭉친 첫 번째 농구 예능이다. 첫 회는 농구보다는 몸개그에 가깝게 티격태격하며 백지 상태임을 보여주며 시작했다. 이른바 성장 서사의 밑 작업이다. 엄청난 운동 감각과 신체를 가진 출연자들은 국내 최정상급 스킬트레이닝을 받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룰 것이고, 그 과정이 재미의 한 축을 담당할 거다.

진짜 흥미로운 부분은 히든 미션이다. 농구는 지난 20년간 NBA의 글로벌 시장 확장세에 힘입어 축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구기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 기간 동안 반대로 흘러갔다. 여기서 아저씨들로 이뤄진 상암 불낙스는 또 한 번 90년대 향수에 머무는 농구 콘텐츠일까라는 염려를 나름의 유로스텝을 밟으며 돌파했다. 이들이 보여줄 즐거운 농구가 현재성을 잃은 오늘날 한국 농구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과연 농구의 흥미를 어디까지 올려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만한 흥미진진한 여정이 시작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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