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박사는 비판보다 먼저 마음을 읽었다(‘오은영 리포트’)

[엔터미디어=정덕현] “나 같으면 딱 그러겠네. 남자에 애착심이 있고 같이 한 가정을 이뤄서 같이 살라하면 그냥 쇼호스트인가 그걸 접고 천안 내려가서 거기도 사람 사는 데니까 간호사는 바로 들어갈 거 아니냐. 그러면 월급 받고 충분히 살아갈 건데 그걸 안하려고 하니까...”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서 조혜련의 엄마는 며느리 박혜민에게 대놓고 꿈을 접으라 했다. 결국 박혜민은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꺼내 놨다. “오빠는 배우로써 10년 넘게 버티는데 왜 저는 1,2년도 안되는데요?” 그러자 시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그 희망이 있을 것 같애? 내는 그게 아닐 성 싶어 하는 얘기 아니냐.”

결국 감정싸움이 시작됐다. 박혜민 역시 남편 조지환이 배우로서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맞받았다. 자신이 꾸는 꿈이 희망이 없다는 단언에 똑같이 아들도 그렇다고 맞받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결국 말 섞기가 싫다며 “남자를 깔아뭉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사실 이 짧은 장면은 지난주 <오은영 리포트>에 예고편으로 살짝 등장해 일주일간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켰다. 프로그램에서는 심각한 갈등 상황이 보였는데, SNS 등에서는 화기애애한 방송과 사진이 올라와 방송출연을 목적으로 한 ‘조작’ 아니냐는 의심까지 샀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예고편의 짧은 편집이 이들의 모든 상황을 다 말해줄 순 없었다.

시청자들이나 이 관찰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는 출연자들은 당연히 시어머니의 이런 발언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게다. 여전히 “남자가” “여자가” 같은 단서를 붙여 하는 말 속에는 가부장적 사고에 익숙한 차별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출연자들조차 놀라며 불편한 감정들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고부갈등으로 시어머니의 시대착오적 말이 가시가 되어 콕콕 박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오은영 박사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당장의 비판 대신 먼저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읽어보자는 거였다. 그 시대 일곱 명의 딸 뒤에 아들 하나를 뒀던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당했을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마침 그 이야기에 조지환 역시 자신의 아픈 트라우마를 꺼내놨다. 어느 날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고 계셨다는 것. 그래서 화가 나 아버지에게 대들었는데 그 후로 자신은 패륜아가 되어 할머니에게도 외면당했다는 거였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가장 조지환이 잊고 싶을 정도로 아픈 상처로 남아 있었다.

아들 못 낳는 여자로 핍박받았던 어머니에게 이 막내아들은 자식 그이상의 의미였을 것이고, 남편에게 기댈 수 없으니 홀로 그 짐을 다 짊어지셨을 거라고 오은영 박사는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현재 며느리에게 하는 말들은 사실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고 해도 했을 거라고 했다. 즉 이것이 그저 며느리여서 겪는 고부갈등이 아니라 어머니가 겪은 고된 삶이 묻어난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가정이 어려울 때는 그 짐을 짊어지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었고 그것을 “엄마 역할”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걸 이해해보자는 오은영 박사의 말은 가족 내 갈등과 불화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오은영 박사는 또 조지환이 진득하게 한 직업을 꾸준히 하기보다는 자꾸만 다른 직업을 기웃거리는 것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에게도, 남편이 왜 그런가 하는 이유를 들려줬다.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감정 때문에 주변에서 마치 아버지 같은 위치에 계신 누군가가 불러주면 일보다는 그런 인간관계에 더 빠져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게다가 오은영 박사는 고부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조지환의 화법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말을 할 때 “걔가-” 같은 3인칭을 대상으로 하는 화법이 오히려 어머니의 마음을 긁어놓을 수 있다는 거였다. 3인칭 화법은 고부갈등 상황에서 남편이 슬그머니 발을 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오은영 박사는 대신 “내가-”를 쓰는 1인칭 화법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의 고부갈등을 가진 남편들이라면 새겨들을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는 박혜민이 살아왔던 삶을 들여다보며 그 마음 역시 헤아렸다. 터울이 있는 동생들 때문에 빨리 사회에 자립할 수 있는 간호사를 선택했던 박혜민은 사실 하고 싶은 걸 했다기보다는 자기욕심을 버렸던 사람이었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박혜민을 심정적인 소녀가장으로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남편을 돕는 ‘아줌마 가장’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이걸 알아줬으면 하는데 그런 말 한 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어 서러울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물론 오은영 박사가 한 말들이 완전히 100% 이들의 사정을 읽어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게다. 하지만 적어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어떻게 접근해야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단초를 보여줬다. 그건 당장 상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마음을 읽어보는 일이었다.

조지환은 방송이 끝난 후 대기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방송 출연하면서 욕도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두려움보다는 좀 해방되는 느낌이 있었어.” 그 말에 박혜민도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오늘 상담 받은 걸 실생활에 진짜 적용했으면 좋겠어.” 이 대화는 적어도 <오은영 리포트>가 어떤 방송이고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짧은 예고편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부의 갈등이다. 제작진도 너무 자극적인 예고로 시청자들을 오해하게 만들지 않아야 하고, 시청자들 역시 당장의 비판보다는 그 마음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오은영 박사가 그렇하듯이.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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