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리포트’, 때론 싸우는 게 대화 단절보다는 낫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이 두 분은 지금 상태는요, 정서적으로는 이혼상태입니다. 법적으로는 이혼을 안하셨고 혼인관계를 유지하고는 계시지만 정서적으로는 이혼상태라고 볼 수가 있어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는 부부. 그런 상태가 무려 5년 간 지속됐다고 한다. 무언가 용건이 있을 때는 대화 대신 핸드폰을 들고 문자를 보낸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 출연한 이른바 ‘음소거 부부’에게 오은영 박사는 냉철하게 ‘정서적 이혼상태’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 광경을 스튜디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이 느껴졌다. 늦게 퇴근한 아내가 애써 맥주 한 잔 할 거냐고 묻고, 의외라는 듯 “응”하고 답한 남편이지만 그들은 이내 그 냉랭한 관계로 돌아갔다. 맥주를 받아서 남편이 혼자 먼저 마시는 순간부터 엇나간 대화는, 아이들 보는 문제에서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짜증이 난 아내는 잔뜩 방치된 설거지 거리 앞에서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아내가 영어 학원 상담 이야기를 꺼내자 냉랭하게 답하는 남편 모습에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해진다.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감정을 고려하는 대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아 입만 열면 싸우게 되는 부부. 게다가 아이들 사교육 문제에서도 부부는 이견이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 사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있지만 이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식으로 에둘러 이야기했고, 아내는 그것이 마치 “열린 아빠”처럼 보이려 하지만 사실은 남편이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 관심이 없다고 느꼈다.

이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서로의 경제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있었다. 프리랜서식으로 일하는 남편은 벌이가 일정치 않아 사교육 문제에 부담을 느꼈지만 그걸 공유하지 않으니 아내로서도 그 내막을 알 수 없어 그런 태도 자체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내는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면서 대화 자체가 없으니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 육아하느라 힘들어하는 것도 잘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아내는 자신이 모든 걸 하고 있다고 느꼈고 남편의 “존재 가치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은영 박사는 “이 정도면 부부가 아니라 회사 동료”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해야 할 일의 역할을 나누는 것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문제는 쌍둥이 자녀들 역시 이들 부부의 이런 갈등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밥을 먹다 대화가 아닌 싸움처럼 언성이 조금 높아지자 아이들은 서로 부모의 팔을 잡아끌며 “싸우지 말라”고 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건 싸우는 게 아니라 대화라고 했지만 그 광경을 본 오은영 박사는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혼돈을 줄 것이라고 일침 했다. 즉 대화가 그렇게 불편한 것이라고 아이들이 느끼면 아예 아이들도 대화를 꺼리게 될 수 있다는 거였다. 결국 이 부부들의 결혼생활이 ‘지옥’이 된 건 과거 아내가 임신 중 차 안에서 싸우다 내리겠다는 아내를 진짜 내려두고 가버린 사건 이후 벌어진 감정과 갈등들이 쌓이면서 대화 단절로 이어지면서 생겨난 결과였다.

오은영 박사는 이들의 문제가 “둘 다 열심히 사는데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신 거 같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고마움을 잊어버리면 당연하다 생각하고 당연하다 생각하면 요구하게 된다고 했다. 다만 이 부부는 아이들에 대한 감정은 비슷했다. 애들이 안됐고 미안하다는 것. 그 부분은 그나마 이 부부가 가진 어떤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또 남편은 존재 가치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아내를 보며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으면 그렇게까지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노력을 나름대로는 했는데 그걸 몰라주는 아내가 서운하기도 했다고.

오은영 박사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이런 갈등을 어떻게 느낄까를 먼저 꺼내놓는 것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싸움이 아니라 대화라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싸우는 게 맞다고 말하는 게 낫다는 것. 딴에는 아이들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싸움을 피하거나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대화라고 하는 것에서 더더욱 큰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의견이 안 맞아 엄마 아빠가 다투는데 큰 걱정할 건 없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는 거였다.

오은영 박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먼저 파악하고 자신의 그런 면이 상대에게 어떤 어려움을 만들었을까를 아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점철되어 있는 분이지만 너무 세서 남편이 하는 말들이 그저 무성의하고 무시하는 듯 느끼지만, 남편은 그 안에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어렵게 말을 꺼내는 것이지 무시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압력이 힘들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반면 남편은 점잖고 친절한 분이지만 불편함을 해결해나가는 걸 너무나 어려워한다고 했다. ‘어색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남편은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그에게 오은영 박사는 “결혼생활은 ×팔림의 연속”이라며 “200번 거울보고 연습하라”고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 치부까지도 꺼내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부부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다는 것. 또 이 문제는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고 중재자 또한 필요하다고 조언했고 그래서 부부는 지역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오은영 박사는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하는 상담을 ‘솔루션’이 아니라 ‘부부 힐링 리포트’라고 굳이 표현했는데 거기에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한 답변처럼 보인다. 사실 <오은영 리포트>는 시작 지점에서부터 다소 과한 갈등 상황들을 자극적으로 꺼내놓는 점으로 시청자들의 우려를 샀고 그래서 많은 지적과 비판들이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이번 회를 보면 훨씬 자극적인 갈등 상황 그 자체보다 그 문제를 풀어가는 오은영 박사의 심리상담과, 이 특정 상황을 통해 부부 사이의 소통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같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져오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이번 회차가 보여준 것처럼 분명한 방향성과 균형점들이 있어야 오은영 박사가 말하는 ‘부부 힐링 리포트’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