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능감의 시대, 자극과 만난 오은영 매직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3년간 TV예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이다.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작으로 2020년 이후 본인의 이름을 걸고 런칭한 프로그램만 대략 8편 이상이며, KBS2 <대화의 희열2>, TV조선 <개나리학당> 등등 비중 있는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그 곱절은 된다. 그런데 이런 왕성한 방송 활동은 그의 커리어에 일부분이다. 신문 칼럼, 저술 활동, 본업인 상담과 사업체 운영은 물론, 개인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한다. 최근에는 화려한 방문자 명단이 화제가 된 토크콘서트로 전국 투어 중이다. 말하면 만남이 이뤄지는 티빙 <서울체크인>의 이효리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셀럽들의 셀럽인 셈이다.

오은영은 혜성처럼 갑자기 등장한 방송인이 아니다. 30년 경력을 가진 명성이 자자한 의과대학 교수이며,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해 EBS <생방송 60분 부모>와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8~9년 가까이 진행해온 16년차 방송인이다. ‘금쪽’으로 육아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도 겸손한 태도와 특유의 따뜻한 공감의 시선과 쉬운 화법으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위로가 되는 솔루션을 제시해 육아맘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백종원, 강형욱 등과 마찬가지로 방송이란 메가폰을 활용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진정성으로 더욱 더 큰 사랑을 얻고 있다. 아이가 아닌 부모의 훈육 등 부모와 자녀 사이 갈등의 원인을 발견하는 시선 전환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공감의 따사로운 시선과 편안한 언어로 문제의 근본을 파고드는 놀라운 솔루션은 육아맘의 멘토를 넘어 관계와 자존감 문제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심리 테라피로 이어졌다. 흥행의 구름판이었던 <금쪽같은 내 새끼>의 시청층 변화를 보면 30대 여성과 60대 여성(조부모)에서 이후 10대부터 20대 남성까지 주요 시청자 층이 넓어졌다. 그러면서 소아‧청소년에서 중‧장년까지, 육아에서 이혼까지 오은영의 매직이 닿는 범위는 확장됐다. <써클 하우스>는 청춘을, <미친.사랑.X>는 연애를, <내가 알던 내가 아냐>는 연예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는 이 모든 걸 다 종합하고, <가장 보통의 가족>은 가족관찰예능에 솔루션 더한 버전이다.

오은영 박사가 토크콘서트를 할 정도로 대중적 지지를 얻고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쫓아다니는 이유는 당장 느낄 수 있는 정서적 효능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공감하고, 이유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굳게 닫혔던,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아팠던 마음이 풀어진다. 타인의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위로와 치유의 교감이다. 문제를 너무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이며,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를 돕고자 하는 힘이 있다며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긍정의 응원을 건넨다.

이런 즉각적인 효능감을 바탕으로 하는 오은영 콘텐츠의 확장은 오늘날 예능과 교양 TV콘텐츠가 품어야 하는 정확한 비전을 상징한다.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제작 발표회에서 오은영 박사는 주관적 이야기가 아닌 정보, 데이터에 근거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 조언”에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TV를 보게 만드는 재미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육아를 벗어나 대폭 확장해 쏟아지는 오은영 박사의 콘텐츠는 아쉬움도 따른다. 우선 예능 작법 차원에서 보자면 같은 계열 방송인인 백종원, 강형욱처럼 필드에서 뛰지 않고 스튜디오에 머문다. 그 결과 관찰예능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결의 효용과 드라마틱한 변화가 관찰 카메라 속 이야기에서 맺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윤여정이나 이효리, 혹은 백종원과 달리 전문가 명함 뒤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볼거리 자체가 관찰예능의 코멘터리 이상으로 확장하기 어려움을 갖는다.

두 번째는 솔루션을 위한 빌드업이다. 드라마틱한 변화, 놀라운 변화를 이뤄내는 매직을 선사하기 위해선 딛고 있는 바닥이 엉망진창이어야 한다. SBS <골목식당>이 위생부터 태도, 조리기술까지 엉망인 이른바 빌런을 개과천선시킬 때 시청률과 화제성이 올랐던 것처럼 지식과 정보, 심리 테라피를 전하던 오은영 콘텐츠들이 점점 더 빌런을 찾고 있다. 그래서 KBS2 <살림남> 흥행의 주역으로서, 연예대상에서 가족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관찰예능의 가족 시트콤화라는 새로운 중장년층 콘텐츠를 만들며 CF까지 진출했던 김승현 가족이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서 보여준 모습은 충격 그 자체다. 시청률은 오은영 콘텐츠 중 최고 기록인 7%를 찍었지만 남는 건 오은영의 매직이 아니라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반가운 이들이 서로에게 쏟아내는 악다구니다.

시트콤처럼 즐겼던 부부가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를 심각한 부부 싸움을 하는 와중에 “사랑해요”를 외치자는 제안이 시청자들에게 남을 리 없다. 수년간 투명인간처럼 냉랭하게 지낸 부부에게 전문가에게 부부상담을 받으라는 솔루션은 적합할 수 있으나 방송 내내 보여준 심각한 부부 갈등을 결코 중화하지 못한다. 불행을 관음하는 장면들은 무척이나 구체적이고 반복적인데 비해 판사석 혹은 왕좌에 오른 듯이 연출한 세트 구도에서 내려본 그의 몇 마디 말로 상황이 판가름 나고, 심각한 상황과 관계는 실제 변화, 감정, 현실과 무관하게 종료된다.

물론 자극을 쫓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괜찮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첫 방송 이후, 잡음이 시작됐다. 1회 출연자 배윤정은 개인 SNS를 통해 방송을 위해 과하게 발언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고 사과했다. 시청자 반응 또한,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되었다는 효능보다는 결혼을 혐오하게 만든다는 비난이 훨씬 크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겠다는 선한 영향력은 오은영 콘텐츠가 큰 사랑을 받아온 이유이다. 그런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즉각적 효능감을 빌드업하기 위해 불행을 관음하고 자극의 강도를 높인다면, 결국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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