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은 현실이기에... 이래서 ‘오은영 리포트’가 더 낫다

[엔터미디어=정덕현] 9년째 월급이 얼마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부부. 아내는 빠듯한 살림에 아이들 양육하느라 힘겹지만, 남편은 달라는 생활비도 제 때 주지 않는다. 평소엔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와도 별 관심도 보이지 않던 남편은 생활비 이야기가 나오면 이를 적당히 회피하려 하고, 고장 난 김치 냉장고를 바꾸고 싶다는 ‘돈’ 이야기만 나오면 꼭 바꿔야하냐고 되묻는다. MBC <오은영 리포트>이 가져온 결혼 지옥을 겪는 부부의 사례는 ‘돈’이 주제였다.

부부생활은 현실인지라 돈이 들고, 그래서 그것을 분담하거나 혹은 상의해 해결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은영 리포트>가 소개한 이 부부는 어찌 된 일인지 각자의 경제상황이 공유되고 있지 않았다. 문제는 남편에게 있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월급 전부를 아내에게 주었지만 지금은 월급 명세조차 보이지 않고, 주던 생활비도 뜨문뜨문 해졌다는 것.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는 아내는 속상하고 답답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오은영 리포트>의 제작진은 남편의 이런 모습이 의아해 개인 면담을 통해 그 사정을 들어보려 했다. 알고 보니 전세 사기를 당해 1억이 넘는 전세금을 모두 날렸고 그 후 어떻게 지금 사는 아파트를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전세대출을 받아 들어오게 됐지만 상환금을 갚기 위해 카드 빚 같은 돌려막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남편이 아내와 공유하지 않고 홀로 결정하고 끙끙 앓고만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아내는 방송 얼마 전에 이혼까지 결심한 상태였고, 그래서 방송도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 말미에 드디어 남편이 이 사실을 방송을 통해 아내에게 알렸고, 월급 명세서도 아내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의 권고대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꺼내 놨다. “지금까지 계속 마음으로만 미안하다고 생각해서 정말로 미안하고, 앞으로는 좀 더 다정다감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고, 지금까지 결혼해서 한 번도 쉬지 못했는데 정말 그 부분 제일 많이 미안해. 근데 이제 내가 미안해도 일을 하지 말라고 못하는 이유가... 내 욕심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어쨌든 고맙고 미안해.”

보통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미안한 감정을 드러내 사과를 하고나면 다른 한쪽에서 이를 받아주고 화해로 마무리되는 것이 흔한 흐름이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둘만 있는 게 아니라 오은영 박사는 물론이고 이 과정을 보고 있는 다른 패널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이 부부가 그래도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편의 사과를 들은 아내의 입장은 난감할 수 있다. 만일 그런 사과 한 마디로 지금껏 깨져버린 신뢰가 회복될 수 없다고 느끼는 아내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암묵적인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아내는 솔직한 감정을 꺼내 놨다.

“자신이 없어 난. 결혼할 때처럼 그냥 시간에 끌려서... 지금도 결정하는 게 시간에 끌려서 마지못해 하고 싶진 않아. 신뢰는 바닥이고 이미. 안하고 싶었어. 이것(방송)도 중간에. 근데 어떻게 보면 시간에 끌려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지금 내 마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상황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냥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게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당신 모습이 더 싫어. 아이들 생각하면 가정을 꾸려야 되는 게 맞는 거고, 나를 생각하면 벗어나고 싶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당신이 노력한다는 말 자체도 이젠 그 말에 믿음이 없어. 그래서 나는 어떠한 답도 못하겠어.”

사실 이런 답변이 진심일 터였다. 어떻게 방송 한 번으로 그간 쌓인 갈등과 불신이 모두 지워질 수 있을까. <오은영 리포트>는 이런 진솔한 입장까지 고스란히 담아 전했다. 적당한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 놓은 것. 오은영 박사는 “오히려 이 모습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뭐 열심히 합시다”라고 하는 말보다 아내의 진심이 훨씬 와 닿았다는 것. 그러면서 부부가 일상으로 돌아가 노력과 변화의 모습을 잘 지켜보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라고 조언했다.

<오은영 리포트>는 결혼 생활이 지옥이 되어버린 부부들이 출연해 그 갈등을 꺼내놓고 이를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프로그램이지만, 결국 그 문제해결의 열쇠는 당사자들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방송이라고 해서 또 오은영 박사의 조언이라고 해서 무조건 출연자들이 화해하고 그럴 듯한 갈등 해소의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사과를 듣고도 싫다고 솔직하고 진심을 꺼낸 아내와 이를 방송에 있는 그대로 담아낸 <오은영 리포트>의 선택은 당연하고도 적절했다 생각된다. 조언은 해주지만 선택은 결국 당사자들이 해야 하는 것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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