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간 ‘펜트하우스’, 산촌 간 ‘슬의생’...스핀오프 전성시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1년 반 동안 달려온 드라마 촬영.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끝낸 엄기준은 극중 주단태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 힐링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도록 함께 촬영해온 동료들과 함께라면 그게 어디든 행복할 거라는 마음도 전했다. 그래서 다시 모인 엄기준, 봉태규 그리고 윤종훈. 각각 <펜트하우스>에서 주단태, 이규진, 하윤철이라는 빌런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제작진이 제공한다는 아지트를 찾아간 그들은 그 곳이 폐가라는 걸 알고는 아연실색한다. 펜트하우스에 살던 이들이 폐가로 왔다는 그 상황은 이들이 예능이 아닌 노동만 하루 종일 해도 tvN <해치지 않아>가 웃음을 주는 포인트가 된다.

<펜트하우스>에서 화려한 삶을 보여줬던(비록 드라마 속이지만) 이들이 전남 고흥의 흉흉한 폐가를 마주하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대목은 묘한 카타르시스와 현타가 주는 웃음을 동반한다. 드라마 속에서 얼마나 욕망에 불타는 그들이었던가. 그러니 구멍이 숭숭 뚫린 문들과 먼지 가득한 마루, 그리고 다시 깔아야 잠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장판 그리고 방치되어 웃자란 풀들이 가득한 마당 앞에서 아연실색하는 모습이 마치 화려한 배역의 연기를 끝내고 평범한 현실로 돌아온 연기자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뜨거운 한 여름, 공복을 달래며 마을에 나가 장판부터 문풍지에 먹을거리들을 사서 돌아와 서투른 솜씨로 장판을 깔고 문풍지를 교체하고 장작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 먹는 모습은 그래서 별다른 예능적 조미료를 치지 않아도 웃기다. 그 와중에도 이들은 저마다의 성격과 개성을 드러낸다. 맏형으로서 체력은 좀 떨어져도 애써 일을 하며 가끔씩 주단태의 분노를 유머로 드러내는 엄기준이라면, 다소 엉뚱하고 허술한 말과 행동으로 웃음을 만들고 의외의 고집을 피워 티키타카를 만드는 봉태규다. 그리고 철없어 보이는 두 형과 달리 막내 윤종훈은 집안일부터 음식까지 챙기는 ‘황금막내’로 등극했다.

계속 이어지는 노동에 결국 혼이 나간 엄기준이 “이게 무슨 힐링이야?”라며 주단태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봉태규가 “이런 그지 같은 프로그램이 어딨어?”라고 맞장구치며 이규진의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 <해치지 않아>가 주는 웃음은 비등점을 넘는다. 힐링을 꿈꾸고, 극중 빌런이 아닌 본캐를 드러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빌런의 목소리를 내는 그 지점에서 폭소가 터지는 것.

물론 <해치지 않아>의 서사는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폐가를 고쳐 전원의 삶을 누리고픈 욕망은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하기 마련인 도시인들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그래서 이 폐가가 이들의 손길에 의해 변화되어가는 과정과, 처음에는 귀신 나올 것 같던 그 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선선히 부는 바람을 느끼며 무엇보다 보고픈 이들을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진짜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에서 함께 출연했던 이지아, 김영대, 한지현 그리고 김소연까지 손님으로 찾아올 거라는 복선은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 이제 스핀오프는 하나의 제작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해치지 않아>는 드라마가 예능과 콜라보해 일종의 스핀오프를 낸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펜트하우스>의 중심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파생시킨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 구성은 나영석 사단의 <삼시세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펜트하우스>에서 그것도 악랄한 빌런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해치지 않아>의 스토리를 새롭게 해준다.

이런 사례는 이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끝낸 99즈 5인방이 나영석 PD와 손잡고 다음 달 8일부터 방영될 <슬기로운 산촌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나영석 PD는 과거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와 콜라보해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판 스핀오프를 시도했었다. 또 <슬기로운 의사생활>과는 시즌1이 끝나고 시즌2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는 <슬기로운 캠핑생활>로 이미 예능의 가능성을 예고한 바 있다.

<슬기로운 산촌생활> 역시 <삼시세끼>의 형식 그대로지만 이 또한 달리 보이는 건 출연자들이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라는 점일 게다. 드라마 속에서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그들이 이제 현실로 튀어나와 보여줄 산촌 자급자족의 일상이 어떤 재미를 만들어낼지 시청자들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특히 드라마 종영에 아쉬움을 가진 팬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아쉬움과 기대감 속에서 성공한 드라마의 예능 스핀오프는 이제 또 하나의 제작방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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