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꺼이 자신을 패러디한 ‘무한도전’의 자신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무한도전'과 패러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급기야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스스로를 패러디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대본 없이 100% 애드립으로 만들어지는 리얼 콩트 '무한상사'는 '무한도전' 스키점프대 미션을 패러디했다. 미끄러운 경사면을 기어오르는 그 미션을 마치 남 일인 듯, 자신들도 할 수 있다며 다시 오른 '무한상사' 멤버들은 눈이 깊게 쌓여있어 너무나 쉽게 경사면을 오르면서 "이거 별거 아니네" 하고 스스로를 비꼬았다.
본래 '무한도전' 스키점프대 미션에서는 길이 경사면에서 자꾸 미끄러져 오르지 못하자 먼저 오른 유재석이 밑으로 다시 내려와 길을 받쳐주면서 오르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포기한다는 말만 하지 마라"는 유재석의 말은 그의 '함께 하는' 리더십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를 패러디한 '무한상사'에서는 길이 손을 내밀자 매몰차게 유부장이 이를 뿌리치면서 "예능은 사회와 다르다"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다.
이어진 '무한상사'의 신년회 상황극은 사무실이 폐쇄되고 지하로 쫓겨난 '무한상사' 멤버들이 '무한상사'의 로고를 만드는 미션을 보여주었다. 이것 역시 과거 '무한도전'에서 했던 디자인 미션의 짧은 패러디처럼 보였다. 또한 '무한상사'의 사무실을 회장이 빼는 설정은 다분히 '무한도전'과 MBC 경영진 사이에 놓여진 성향의 차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 진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 쫓겨나는 상황설정은 '무한도전'이 서있는 위치를 상당 부분 패러디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또한 '하하 vs 홍철'은 다분히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을 연상시킨다. 똑같이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지는 이 대결은 레슬링 특집의 그 힘겨움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패러디로 읽힌다. 자유투 던지기, 동전 뒤집기, 간지럼 참기 같은 대결들은 그 소소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관중의 반응을 일으키면서 힘겨웠던 레슬링 특집의 상황들을 뒤집어 놓는다. 별거 아닌 것에 목숨 거는 대결구도가 진짜 대결의 패러디로 그려지는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이 보여준 이런 다양한 미션들은 전면에 패러디를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그것이 진짜 패러디를 의도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무한도전'처럼 열린 예능은 그 상황이 던져주는 다양한 해석의 재미 또한 열려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껏 '무한도전'을 열렬히 시청해온 시청자라면 그 속에서 패러디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한도전'의 이번 패러디가 외부의 콘텐츠가 아니라 자신들의 콘텐츠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패러디란 원본의 무게감이 확실해야 그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다. 원본을 모르는 상태에서의 패러디란 그 비교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무한도전'이 자신들의 콘텐츠들을 패러디하는 이 상황은 '무한도전' 특유의 웃음의 포인트를 드러낸다.
물론 '무한도전'은 그저 패러디의 맥락 없이 봐도 충분히 재미를 주지만, 만일 이런 '무한도전'만의 히스토리를 알면 더 폭넓은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은 '무한도전'이 팬덤 예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패러디을 통해 느껴지는 것은 '무한도전'이 스스로의 콘텐츠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감이다. '무한도전'이 지금껏 해온 도전과 그 과정들은 다시 패러디를 해도 될 만큼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거라는 강한 자신감. 패러디를 통해 이제 콘텐츠를 자가 발전시키는 '무한도전'의 '무한상사'가 흥미로운 건 그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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