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이랑 비슷한 모습에 반갑기도 했어요. 몸이 아직 끈적끈적한데 이러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게 너무 찝찝하고 그래요." – <정글의 법칙 W>에서 홍수아가 한 말.

[엔터미디어=나지언의 어떻게 그런 말을] 1월의 정글 안에는 새총으로 뱀 잡고 두 손으로 뚝딱 뗏목 만들고 나무를 잘 타는 달인 김병만은 없었다. 설 특집으로 제작 방송된 <정글의 법칙 W>는 김주희 아나운서, 개그맨 정주리와 김나영, 배우 전혜빈과 홍수아가 4박 5일간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겪는 정글 체험기를 다뤘다. 정글엔 (자외선 차단을 신경 쓰는) 여자 다섯만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김병만 정글의 법칙>을 보면서 궁금증을 해소 못한 시청자도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정글의 법칙 W>에는 달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여자 다섯이 느끼는 정글 체험에 대한 진짜 짜증나는 시선과 <김병만 정글의 법칙>을 보면서 ‘정말 저렇게 찍어?’라고 생각한 시청자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공존했다. 두 시선은 신선했고 새로운 재미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 마디로, <김병만 정글의 법칙>에서 초반부 황광희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정글에 가는데 캐리어를 끌고 온 김주희, 선크림 가지고 가면 안되냐고 묻는 홍수아, 코코넛 열매를 자신만 빼놓고 먹은 것에 삐친 정주리 등 정글에 가게 된 여자라면 느끼게 될 것 같은 혼란과 갈등의 사소한 부분들이 세밀하게 드러났다. 때론 그것은 천진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홍수아는 막상 정글에 도착하자 “시골 마을이랑 비슷한 모습에 반갑기도 했어요. (근데) 몸이 아직 끈적끈적한데 이러고 잠을 자야 한다는 게 너무 찝찝하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자연을 보면서 느끼는 어린 아이 같은 감상적인 태도, 도마뱀이나 애벌레를 먹는 두려움보다는 막상 온 몸이 물에 젖었는데 이대로 자야 하는지에 대한 여자들 특유의 걱정이 시청자를 자연스레 웃게 했다. 심지어 홍수아가 돌아가면서 각자의 소감을 얘기해보자고 할 때는 수학여행 간 여고생들처럼 보여 귀엽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김병만 정글의 법칙>의 정글보다는 상황 설정의 강도가 더 약한 탓도 있겠지만, 여자 김병만으로 불릴 정도로 가장 정글 체험에 열심이었던 전혜빈의 느긋하고도 긍정적인 태도는 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능에 좀 더 가깝게 보이게 하긴 했다. 전혜빈은 바나나 나무를 쓰러뜨리고는 “내가 이렇게 힘이 셌었나?”라고 무심하게 말하며 바타크 족이 도마뱀 고기를 가져오자 “언제 우리가 도마뱀 고기를 먹어 보겠니”라고 쿨하게 먹는다. 서로 예능감 없다고 비난하는 요즘 버라이어티의 공격적인 웃음과는 다른 종류인데다가, <김병만 정글의 법칙>의 생사를 위협하는 두려움이 거세돼 있어서 그런지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라면 스프로 만든 다슬기 국물을 정주리가 엎질렀을 때의 험악한 분위기, 누구는 화장품 바르고 누구는 일하는 짜증나는 상황, 도마뱀 보고 기겁하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이 공존하는 어이 없는 상황 등 갈등의 에피소드를 좀 더 구체화시킨다면 여자들이 정글에서 만들어내는 리얼리티의 드라마로 충분할 듯하다.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건 의심 많은 시청자의 시선이었다. <김병만 정글의 법칙>을 본 시청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과연 그들은 저 야생에서 잘까? 그들은 정말 에벌레를 먹을까? 제작진은 그들에게 먹을 걸 안 줄까? 정주리, 김나영 등의 출연진은 우리가 느끼는 이 불온한 의문을 제작진에게 되묻는다. 김나영이 “그럼 스탭들은 어디서 자요? 스탭들은 호텔 잡았죠?”라고 솔직하게 묻는 덕분에, 시청자들은 출연진들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더 쉬워졌다.

물론 황당한 부분도 많았다. 후반부로 가면서 정글 체험이 갑자기 바타크 부족과 함께하는 짝짓기 예능 오락프로그램으로 바뀐 건 가장 한심한 점이었다. 2005년 종영한 프로그램 <도전! 지구탐험대>를 보는 기분이었으며 바타크 부족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사실은 그들을 희화화시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원주민 청년들이 야자나무 열매를 따주질 않나, 도마뱀 고기를 갖다주질 않나 그들의 정글 체험은 후반부로 갈수록 의미와 목적성마저 잃었다. 김주희 아나운서와 원주민 청년의 사랑 어쩌구 에피소드는 올해 TV에서 본 가장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시청자들이 눈 크게 뜨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데 집 지붕 위에 쓸 야자수 잎을 어떻게 구했는지 집 바닥에 까는 대나무는 어디서 구했는지 정글 체험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조차 스리슬쩍 생략한 것도 아쉬웠다. <정글의 법칙 W>가 만약 정규 편성이 된다면 그 과정을 몰래 생략할 게 아니라 <김병만 정글의 법칙>과는 다른, 좀 더 느슨한 법칙을 적용하는 게 좋을 듯 하다. 제발 원주민 청년과 베스트 커플 선발대회 같은 건 하지 좀 말고.


칼럼니스트 나지언 <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 nahjiun@paran.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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