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이 넉넉하게 500회를 맞이할 수 있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런닝맨>이 500회를 앞두고 있다. 2010년 리얼 버라이어티의 전성시대에 시작해 어느덧 10년째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9주년을 맞아 장기 프로젝트 첫 국내 팬미팅과 기자회견을 성대히 치르며 시청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여전한 존재감을 발휘한 바 있다. 그리고 또 한 해가 지난 오늘, <런닝맨>은 안정적인 시청률과 웨이브(OTT서비스) 예능 차트에서 늘 2~3순위에 랭크되는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대표 한류예능이자 장수 주말예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500회를 앞두고 프로그램 안팎에 변화와 사고가 있다. 우선 지난 2010년부터 조연출로 참여해 10년간 런닝맨과 함께한 정철민 PD가 퇴사하면서 메인 연출자가 교체됐다.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솔직한 고민과 애정을 드러냈던 정 PD는 2017년, 길고도 긴 침체기를 종식시킨 전소민과 양세찬 카드를 꼽아든 당사자이자 긴장감을 배가시킨 게임 설계로 제2의 전성기를 만들면서 스타 PD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다.



그즈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멤버인 이광수가 지난 2월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 치료차 2주간 이탈하며 큰 공백이 생겼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부리나케 돌아오자마자, 이번엔 팀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담당하던 전소민이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로 한 달간 <런닝맨>을 떠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 또한 당장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큰 제약이다.

하지만 큰 걸림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이러한 위기와 맞이한 변화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메인 연출은 정철민 PD와 함께 오랫동안 <런닝맨>과 함께 뛰어온 최보필 PD가 내부 승진해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있다. 그간 덕지덕지 휘감겨 있던 여러 가지 억지스러운 러브라인을 싹 걷어내고, 담백하게 게임에 집중하자 오히려 캐릭터쇼의 활기가 살아났다. 무엇보다 금손, 능력자 캐릭터를 잃은 후 긴 슬럼프를 겪던 송지효에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담지효’라는 일종의 샌드백형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활로를 열어줬고, 다른 멤버들도 분위기를 잡으면서 재빨리 새로운 캐릭터를 안착시켰다.



<런닝맨>의 캐릭터쇼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자 10년간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캐릭터쇼는 높은 수준의 친밀도를 자랑하는데, 그 근간에는 특유의 파이팅이 있다. 유재석이란 높은 에너지레벨을 항상 유지하는 메인MC의 리드 하에 멤버들이 모두 ‘열심히’한다는 게 포인트다. 김종국처럼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기존 캐릭터에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빈자리를 찾아가 서로 서로 메운다. 이는 매일 승패가 걸린 게임 예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발현되는 장점이기도 하고, 출연자들이 계속해서 부딪히는 상황에 놓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변화하기도 한다.

송지효처럼 극과 극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지석진이나 이광수처럼 옆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에이스인 이광수는 공개 연애 이후 그의 대표 콘셉트였던 ‘금사빠’ 캐릭터를 잃었지만, 여전히 다른 출연진의 뒤통수를 가장 잘 치면서도 가장 많이 당하는 샌드백 캐릭터로 10년째 최고의 활약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떡만 썰어도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예능 하드펀처다. <무한도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난봉꾼 캐릭터부터 김종국의 오른팔, 무식한 막내 콘셉트를 아우르던 하하도 중견의 위치에 자리하자 그간 해왔던 캐릭터를 양세찬 등에게 이양하고도 리액션과 게임 진행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캐릭터쇼의 에너지레벨 유지에 한몫을 한다. 가장 약하고 소극적인 캐릭터인 지석진도 이광수가 없던 2주간 전면에 나서 맹활약을 하며 공백을 최소화했다. 10년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런닝맨>이 중간중간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는 이유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는 일종의 성장 서사다. 캐릭터간의 유대가 쌓이는 과정, 그렇게 관계 맺은 캐릭터들이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어 친밀감을 쌓아가는 국면, 그렇게 모인 인물들이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는 장면에서 흡입력과 이야기의 재미는 폭발한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결국 패권을 놓고 물러가게 된 이유도 같은 지점에 있다. 성장의 정점을 찍고 나면 스토리텔링의 동력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캐릭터 플레이가 패턴 안에서 움직이면서 웃음을 만드는 방식은 고착된다.

여기서부터 더 이상 성장은 없다. 조합, 웃음 생산 방식이 식상해진다. 대부분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이런 침체 국면을 인적 구성원의 변화로 타파하려고 했으나 그 유명한 <무한도전>마저도 실패했다. 현재 김태호 PD는 캐릭터쇼의 성장 서사를 가져가면서 기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보다 가볍고 유연한 프로젝트팀 형식의 시스템, 혹은 베타버전을 <놀면 뭐하니?>에서 선보이고 있다.



<런닝맨>이 특별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수를 고수하면서, 한 차례 위기와 개리의 이탈 등의 이슈가 있긴 했지만 큰 틀에서의 변화 없이 원년멤버 그대로 10년 이상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캐릭터쇼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캐릭터쇼 기반 예능은 한 사이클이 돌고나면 패턴이 고착화되고 스토리텔링이 뻔해진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사장됐다. 그런데 9주년 기자회견에서 정철민 PD가 말했듯 ‘게임 버라이어티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 확장성의 한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런닝맨>은 이 고비를 출연자들이 유기적인 조합과 파이팅, 그리고 기다림으로 극복해왔다.

과연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한 리얼 버라이어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놀면 뭐하니?>처럼 다음 버전의 시스템이 나오고, 이미 5년 전부터 관찰예능이란 다른 세대 예능으로 대세가 옮겨간 오늘날 초창기 버전 그대로의 버라이어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런닝맨>은 매주 매주가 기록이고 실험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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