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러진 화살’이 남긴 해결 안 된 숙제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요즘 사법권력은 두 영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판사를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1980년대 부산 폭력조직의 세계를 다룬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검사를 좋게 그리지 않는다. 게다가 두 영화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조범석 검사(곽도원)는 조폭이나 브로커의 로비에 넘어가지 않는 조직소탕 전문의 소신 검사 같지만 건달들의 역할 관계를 이용해 대결과 갈등을 조장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협잡도 서슴치 않는다. 더 치밀해진 나쁜 검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허구라는 점에서 크게 논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투캅스’가 경찰을 마구 조롱해도 허구이기 때문에 경찰 쪽에서 이를 항의하면 오히려 촌스러워진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는 점에서 조금 더 복잡하다. 그 점에서 다분히 논란이 됐고 MBC ‘100분토론’의 주제로도 다뤄졌다. 나는 지난주 ‘100분토론’에서 방송된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논의를 미련하게(?) 끝까지 봤다. 이날 토론은 100분이 아닌 ‘10분토론’이면 충분했다. 나머지 시간은 처음 10분동안 했던 말을 표현만 조금씩 바꿔 반복하는 수준의 도돌이표 토론이었다. 양측의 의견과 주장이 부딪쳐 합(合)을 도출하기는커녕 서로의 상반된 주장만 확인한 채 끝났다.
한 쪽은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판사들을 비난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고, 또 다른 쪽은 영화에서 허구와 사실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자를 대변한 부장판사 출신의 노영보 변호사는 “사실과 허구는 구분돼야 한다. 허구로 영화를 만들고 (감독이) 이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영화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유지나 동국대 교수는 “영화는 허구이며 100% 창작이다. 최근에는 극영화와 다큐의 경계조차 허물어지고 있다. 영화는 보는 사람이 마음대로 보는 것이다”라고 이를 반박했다. 유 교수는 영화가 허구지만 실제로 그럴 것 같게 느끼게 했다면 리얼리즘 영화로서 잘 만든 것이며 핍진성이라는 전문용어까지 써가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양측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 양극화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킬 여지가 조금도 없어보였다. 이번 토론은 양측 모두 토론주제를 끌고 갈만한 수준을 갖추지 못했지만 특히 진보 측의 준비와 논리는 부족했다.
왜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반대되는 증거도 많은데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한쪽 말만 충실히 반영했냐는 보수 쪽 인사들의 지적에 장유식 변호사나 금태섭 변호사 등 진보 측도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했다.

극영화를 무조건 ‘허구’라고 하면 영화의 존재가치 자체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드라마도 방법적으로 ‘공주의 남자’ 같이 사실과 허구를 섞은 팩션사극도 있고 ‘해를 품은 달’과 같은 픽션사극도 있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극으로 현실을 이야기하게 할 수도 있다.
‘부러진 화살’은 판사와 검사의 시각이 상당부분 배제되어 있음은 사실이다. 김경호 교수(안성기)와 박준 변호사(박원상)는 치밀하게 준비하지만 판사와 검사는 꿀먹은 벙어리거나 ‘기각’이라는 단어만 사용한다.
요즘 들어 증거 없이도 감정에 따라 진실이라고 느낀다는 ‘진실스러움’(truthiness)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도 꽤 적용되는 듯하다. ‘부러진 화살’에서 허구와 사실 부분을 명백하게 가리는 일도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건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다. 이 영화는 사법기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의 골이 깊음을 보여주고 있고 법원의 권위적인 태도와 오만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마케팅’이 적중해 관객이 ‘통쾌함’을 느꼈다는 사실만은 사법기관이 받아들여야 한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영화 ‘부러진 화살’, ‘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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