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속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구별해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몇 년 전, 미국 출신의 어느 걸 그룹 멤버가 버라이어티 쇼에서 게스트의 영어 실수를 지적했다가 인터넷의 집중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멤버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소동이었다. 대한민국이 영어라는 언어에 대해 얼마나 비정상적인 콤플렉스를 품고 있는지 알았다면 조금 더 조심했을 것이다.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이 드라마에 카메오로 나와도 ‘유창한 영어실력’을 칭찬받는 나라가 아니던가. 당연히 역풍도 무섭고 비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보통 때 같으면 나는 그 소동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멤버를 공격하며 기가 막힌 논리를 펼칠 때는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군가는 이런 논리를 폈던 것이다. 그 게스트는 영국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영국의 고급 영어’에 능숙할 것이고, 그의 영어는 당연히 캘리포니아 출신의 네이티브 스피커인 상대의 저질 영어의 수준을 능가할 것이다!

와우.

이 환상적인 논리는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그 사람이 품고 있던 영국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왔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 신사의 나라! 머천트-아이보리 영화! 영국 악센트!

아마 그 동안 그 고정관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줄었을 것이다. 요새는 영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영국이라는 나라가 진짜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 굳이 그 나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스킨스] 에피소드 하나만 봐도 ‘오로지 고급 영어만 하는 영국인들’에 대한 환상은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그런 환상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리틀 브리튼]의 비키 폴라드 양을 소개한다. 못 알아듣겠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그게 정상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EzUniIMIuGU&tracker=False

생각해보니, 내가 사람들의 상식을 과소평가한 것 같다. 대부분의 축구 팬들은 ‘신사의 나라’와 거리가 먼 영국의 또 다른 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영어권 대중음악 애호가들도 마찬가지다. 갤러거 형제가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영국에 대해 하나의 상을 품고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대비되는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과거의 이미지이다. 이런 이미지는 영국인들보다 외국인들, 특히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인터넷에서 영국 군주제 폐지 이야기가 나오면 찬성하는 쪽은 영국인이고, 반대하는 쪽은 미국인인 경우가 많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러한 현상을 놀려댈 필요는 없다. 수요가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무리 과거의 환상이라고 해도, 현대 사회의 난폭함과 매너의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세계가 한 때나마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된다. 심지어 그 세계의 불편함과 부당함, 억압까지도 매력적이 된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어떻게 다음과 같은 매혹적인 장면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http://www.youtube.com/watch?v=q4flVFRsIbs&tracker=False

물론 영화 상식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의 원작자가 소설을 다 쓸 때까지도 집사라는 직업을 가진 영국 남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던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일본인이었고, 그걸 각색한 사람은 루스 프라워 자발라라는 인도인 작가였으며, 그걸 감독한 사람은 제임스 아이보리라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영화의 영국성이 얼마나 강한가에 대한 증거일 뿐이다. 이 이미지는 더 이상 창작자 국적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아마 현대 영국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사라진 뒤에도 이 영원한 영국의 이미지는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아있는 나날들]이라는 멋진 예술작품을 버리는 게 아니라,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를 명확히 구별하는 능력이다. 그건 물론 영국 이미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상은 어떤가? 그런 상(들)은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가.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상대하는 데에 과연 도움이 되는가? 반대로 우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정되지 않은 상(들)에 지배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던 외국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게 기억난다. 그 역시 비슷한 매커니즘과 논리에 바탕을 둔 착오였다. 단지 [남아있는 나날들]과 같은 작품이 그래도 실제로 존재했던 시대와 사람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한국 드라마의 남자들은 작가들이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버무려 만든 순수한 창작물이라는 점이 달랐다. 난처하다. 이 경우엔 그 외국 시청자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어야 할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 = 영화 ‘남아있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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