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아니어도 뽑을 것 같은 사람을 뽑는 게 기준입니다.” SBS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 K팝스타>에서 박진영이 한 말.

[엔터미디어=나지언의 어떻게 그런 말을] 누가 만약 TV를 보면서 가장 예측 못한 두 가지 충격적인 반전을 묻는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과 ‘K팝스타’의 이승훈 톱10 진출을 얘기하고 싶다. 아무리 심사위원들이 예뻐해도 노래 못하는 이승훈을 생방송에 나갈 최종 10인 리스트에 올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붙이면 흥미진진해지겠지만 그가 그 노래 잘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됐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 섞인 우려를 하는 대로, 짧은 시간 가장 집중적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와 달리 아이디어와 퍼포먼스로 그가 생방송 무대에서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K팝스타’는 이승훈을 톱10 리스트에 올린 것만으로도 “방송이 아니어도 뽑을 것 같은 사람을 뽑는 게 기준”이라는 프로그램의 애초 취지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 다시 시간을 되돌려 재생 버튼을 눌러보자. ‘K팝스타’의 초반, 세 명의 심사위원은 노래 잘 하는 참가자들의 고음을 들으면서 줄줄이 탈락시켰다. 말하는 것처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알린 박진영은 말했었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게요. 여기 있는 세 명이 흔한 창법으로 흔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걸 되게 싫어해요.” 노래는 못하지만 매력과 끼가 있는 참가자들을 혼자 참 많이 붙여준 양현석도 말했었다.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라 본인만의 특별함이 없어서 불합격시키는 걸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걸 못 참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지난 번과 똑 같은 레파토리면 탈락시켰고(김수환의 마지막 무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창법이 똑같으면 혹평했다(이미쉘의 첫 무대).

‘K팝스타’는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 팝스타가 되는 건 아니다, 노래를 못한다 해도 팝스타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니다’라는 음악시장의 트렌드와 법칙에 충실한 프로그램이다. 이건 가장 노래를 잘 하는 보컬리스트를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노래를 잘하면 그만큼 청자를 움직이는 힘을 더 갖게 되겠지만 팝스타에게 요구되는 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건 모든 대중이 안다. 마돈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 노래를 너무 못한다는 악평이 난무했던 걸 떠올려보라.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을 꼼짝 못하게 하는 매력이 넘쳤던 그녀는 팝의 아이콘이 되었다. ‘K팝스타’는 지금 대중들의 요구를 가장 빨리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당장 캐스팅해서 언젠가 무대에 올리고 싶은 예비 팝스타들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노래를 독창적으로 부르는 것, 초반의 매력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갈 수 있게 새로운 노력을 보여주는 것, 주저하지 않고 무대에서 자신감 있게 끼를 보여주는 것 등을 중점적으로 봤다. 물론 그들의 심사평은 매번 달랐다. 어떤 때는 무표정하게 부른다고 비판했으며 어떤 때는 찡그린다고 혼냈다. 시청자는 각자가 팝스타에게 매력을 느끼는 부분에 따라 혹은 그날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심사위원의 말을 응원했다. 어떤 때는 “그냥 들었을 때 좋았다”는 양현석의 두루뭉실한 말을, 어떤 때는 “별로였어요”라는 보아의 독설을, 어떤 때는 어려운 용어로 설명하는 박진영의 까다로운 분석에 공감했다.



‘K팝스타’는 ‘무대 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대중이 아무리 보고 싶어 안달 나 있어도 그들이 노래를 어떻게 선곡하고 어떤 식으로 연습했는지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 개그맨 최효정이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말한 것처럼,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연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그 법칙도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참가자들의 집안 사정은 어떤지, 왜 노래를 하게 됐는지, 어떻게 혼자 연습했는지 등등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사연 역시 거의 나오지 않았다. ‘K팝스타’에서 그나마 보여준 사연이라면 혼자서 거울 보면서 연습했다는 최래성과 시각 장애가 있는 김수환 정도일까? 그 사연을 보여주는 선정성도 프로그램이 회를 더하면서는 거의 희미해졌다.

참가자들끼리 파트 배분으로 다투거나 서로를 질투하는 과정 역시 나오지 않았다. 선정성은 참가자로부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심사위원에게만 있었다. 생방송에 진출해야 하는 톱10 리스트에 대한 시청자들 의견은 각각 다르겠지만 대중에게 매력적인 팝스타를 만들기 위해 세 명의 심사위원이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시각으로 그 자질과 매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처음의 기준은 대체적으로 지켜진 셈이다. 그들이 자신의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시키고 싶은 팝스타를 꼽는 게 애초 컨셉트였으니까 말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존 포맷이 연상될 수 밖에 없는 생방송 무대, 억지 미션과 어설픈 준비 과정이라는 함정 덕에 지루해지기 십상인 이 생방송 무대를 어떻게 하품 안 나오게 연출할 것인가다. 나 같으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기존 캐스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것 같다. 10명을 계속 몇 주간 무대에 서게 한 다음에, 마지막 주에 YG, JYP, SM에게 단 한 명만 고르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각 엔터테인먼트로부터 간택을 받은 참가자에게는 그 회사에 가고 싶은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한다. 만약 여러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참가자라면 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단 한 명을 고르라고 했을 때 과연 양현석은 이하이와 이승훈 중 누굴 고를까? 그리고 이하이가 YG와 JYP의 러브콜을 받는다면 둘 중 어느 회사를 고를지 궁금하지 않나?


칼럼니스트 나지언 ‘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 nahjiun@paran.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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