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팝이 세계를 정복하길 바란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비교적 무난했던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부정적인 스캔들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빌리 크리스탈의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분장 소동이었다. 오프닝 패러디 클립에서 그는 <미드나잇 인 파리>를 패러디하는 동안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로 분장해서 몇 초간 나왔었다. 아마 많이들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분장은 그가 80년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시절에 자주 써먹었던 레파토리로, 당시엔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종차별과 정치적 공정성에 신경을 쓰는 시대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트위터와 기타 SNS를 통해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쏟아졌고, 이는 이번 시상식의 유일한 흠으로 남았다. 이 소동은 곧 잠잠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굳이 할 필요 없는 농담이었다고 믿는다.
코미디언이 전설의 코미디언 선배를 흉내내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그 코미디언 선배도 성대모사와 흉내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그 선배를 흉내낸 코미디언이 빌리 크리스탈 한 명 뿐도 아닌데? 그건 빌리 크리스탈과 같은 백인 연예인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은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워두면 좋을 용어가 등장한다. Blackface. 이는 주로 백인 연예인들이 민스트렐 쇼나 보드빌에서 흑인의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할 때 하는 검은 분장을 말한다. 19세기만 해도 아무도 여기에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분장쇼는 전국민의 인기오락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는 미국의 인종차별적 문화의 상징이다. 빌리 크리스탈이 존경의 뜻으로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를 모방했다고 해도 그가 일단 흑인으로 변장하기 위해 검은 칠을 했다면 이는 blackface로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이 부작용들을 고려해보면 크리스탈의 이 분장쇼는 이미 코미디의 시효가 지난 것 같다.
비교적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변호될 여지도 충분한 빌리 크리스탈의 분장쇼와는 달리 몇 주 전 <세바퀴>에서 이경실과 김지선이 한 마이콜 분장은 어느 관점으로 보더라도 그냥 노골적인 blackface였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층위가 존재하긴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이 분장한 캐릭터 마이콜은 흑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 변명의 여지는 주지 않는다. 한국독자들은 마이콜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일 수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라. 왜 우리는 마이콜을 보고 웃는가? 그는 흑인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blackface의 논리이다. 당연히 인종차별적이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여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물론 이경실과 김지선은 몰랐다.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변명이 되지 못한다. 그 정도 인권 개념은 21세기를 사는 세계인에게 상식이어야 한다. 농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기분을 다치지 않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우린 이미 오늘 한 오락프로그램이 몇 분 안에 유튜브나 기타 통로들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당연히 우리들끼리 혼자만 놀던 시대의 규칙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들끼리 혼자 놀 때도 그건 상식이었다. 그들이 같이 놀던 사람들이 똑같은 부류였기 때문에 아무도 그걸 지적해주지 못했을 뿐이다.

인권 개념은 경쟁력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맞다. 그 잘난 '국격' 말이다. 이경실과 김지선이 분장쇼를 하고 그게 유튜브에 퍼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아무 것도 없다. 이미 의심받고 있고, 사실이기도 한 우리의 인종차별적 사고방식을 전세계에 광고했을 뿐이다. 방송국에서는 몰랐다고 사과를 했다는데, 그 사과는 우리가 그런 것도 제대로 모를 만큼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광고했을 뿐이다. 이런 건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다.
우리의 둔감함은 이런 식의 분장쇼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가 엄청나게 커다란 밥줄인 한국연예시장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동남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라. 이게 케이팝의 아시아 정복을 노리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맞는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이런 어휘들에 얼마나 둔감한지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지금이야 언어의 장벽이 우리를 스스로의 둔감함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하지만 그 장벽도 덜컹거리기 시작한지 오래다. 이미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번역기의 성능은 점점 더 좋아진다. 얼마 전 모 보이그룹이 태국에서 소란을 좀 피운 모양인데, 조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런 일들은 점점 자주 일어날 거다. 이들은 도대체 자기 방어가 되어 있지 않다.
차리리 우린 대한민국 땅에서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혼자 살 테니 내버려두라는 태도라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한국 문화와 케이팝이 전세계를 정복하길 바라고 <글로벌 성공시대>와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을 보며 감동하고, 버거킹과 스타벅스의 동양인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만은 이런 인권 개념에서 예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부탁이니, 연예계 선후배와 직장친구들로 구성된 그 좁은 울타리 안의 사고에서 벗어나라. 그들은 기껏해야 당신이 아는 것밖에 알지 못하고 당신에게 동의하는 것밖에는 하지 못한다. 진정한 지식은 울타리 밖의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이런 것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굳어있다면 공부를 하라는 말이다. 이런 지식을 쌓아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방어하는 것은 실체도 없는 '인성'을 쌓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MBC,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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