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한가인 부조화가 낳은 착시와 환각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우리는 연애경험이 스펙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연애경험이 많을수록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인생의 자산이 늘어난다. 연애담은 발에 차이도록 넘쳐나고, 사랑의 유통기한은 점점 짧아진다. 그런데 사랑이 쉬워지면 쉬워질수록 거꾸로 목숨을 거는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가 그만큼 커져간다. 연애는 많지만 멜로는 없고, 사랑은 흔하지만 우리는 항상 사랑에 목마르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갈증은 낭만적 사랑이 없는 시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고지순한 낭만적 사랑은 현실 속에서가 아닌 판타지로만 가능하다. 여기 두 가지 가능한 경로가 있다. 한편에는 어떤 계급갈등도 가뿐이 넘어설 수 있는 신데렐라판타지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과거의 시공간 속으로 되돌아가는 사극판타지가 있다. 특히 과거시대로의 회귀는 현실의 제약과 무게에게 벗어나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매력적이다.

그곳에선 운명적인 사랑, 유일무이한 절대적 사랑이 가능하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는 이 폐쇄된 과거의 세계는 안온하고 평안하다. 가혹한 신분질서가 인간을 위계화하고 온갖 고문과 착취가 자행됨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세계는 우리와 떨어져 있는 시공간적 거리만큼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이 된다. 죽음을 넘어서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비극적 낭만성이 되살아나는 것도 이 폐쇄된 과거 공간 속에서이다.

로맨스사극판타지 <해를 품은 달>은 오로지 그러한 낭만적 사랑에 바쳐진 헌사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운명적인 첫사랑을 그린다기보다는 운명적인 첫사랑의 ‘기억’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은 과장을 좋아하는 법이다. 과거의 기억은 사후적으로 엄청 미화(그때가 좋았지)되거나 반대로 지독한 트라우마(그 일만 아니었다면)가 된다. 그래서 훤(김수현/여진구)과 연우(한가인/김유정)가 잃어버린 첫사랑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다. 과거의 잃어버린 첫사랑이 현재를 지배하는 역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이러한 드라마 속 현상은 낭만적 사랑이 로맨스사극이라는 판타지 형식을 통해 시청자를 지배하는 현상과 정확히 동일하다. 마치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듯이 우리가 불러내는 낭만적 사랑은 실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지고지순한 낭만적 사랑, 영원한 첫사랑은 오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연우가 기억을 잃고 월이 되었다가 다시 기억을 찾아 연우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그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려는 간절한 바람, 그 사랑이 다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열렬한 염원은 단지 훤과 연우의 것만이 아니다. 그 바람과 염원은 또한 시청자들의 것이다. 그래서 피어날 듯 생겨날 듯 쉬 형성되지 못하는 김수현과 한가인 사이의 멜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의도된 것처럼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뭔가 화합하지 못하는 두 배우의 부조화는 시청자의 사랑의 갈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뜻밖에도 이러한 부조화는 훤이 월에게가 아닌 나(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감히 내 옆에서 멀어지지 마라, 어명이다.” 채워지지 않는 이 드라마 속 멜로의 결핍은 나의 첫사랑의 기억이 불러오는 착시와 환각으로 채워진다. 오만불손한 재벌남 대신 이번엔 절대 천하지존 왕이 유혹한다.

현실이 암담하고 엄혹할수록 판타지는 힘을 발휘한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스타들에 대한 유례없는 선망/시기가 그러하듯이, 오디션 열풍과 k-pop 열풍이 그러하듯이, 젊고 멋진 배우들에 대한 열망이 그러하듯이. 드라마 캐릭터에 대한 매혹은 배우에 대한 열망과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캐릭터보다 배우가 빛나는 역설이 나타난다. 한류의 주역이 배용준에서 장근석으로 바뀌는 과정이 바로 캐릭터를 능가하는 배우의 존재를 증명한다. 우리는 젊은 왕 훤에게 ‘미혹’된 건지, 훤을 연기하는 마성의 김수현에게 ‘미혹’된 건지, 알 수 없다.

이 완벽한 판타지 세계는 실체 없는 것들로 넘쳐난다. 무녀 아닌 무녀, 정치 없는 정치, 멜로 없는 사랑. 텅 빈 세계를 채우는 것은 아련한 첫사랑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랑으로 설명되고 사랑으로 넘쳐나는 이 판타지로맨스에서 정작 빠져있는 것은 멜로적 감수성이다. 젊음과 미색이 흐르고, 은근한 코믹으로 활기 찬, 매끈한 궁중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해를 품은 달>에는 <성균관스캔들>식의 치열한 정치적 고민과 논쟁도 없고, <공주의 남자>식의 절절한 멜로적 긴장도 없다. 멋드러진 대사들과 촘촘한 사건들만으로 멜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멜로는 정조이다.

참을 수 없는 한 가지, 이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프인 ‘왕은 해, 왕비는 달’과 같은 성별 비유는 오글거림을 떠나서 정말로 옳지 않다.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에서 현대 신계급사회와 맞먹는 과거신분제사회의 참담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왜곡되고 고정적인 성관념이 드라마 전체를 틀지우고 판타지 세계를 구속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로운 발상과 신선한 역전이 못내 아쉽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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