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방송 유감, 재난이 스펙터클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자본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스펙터클로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렇게 스펙터클로 상품화된 것들을 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모두 이 스펙터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재난 뉴스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보고 있는 동안 그것이 다른 한 편으로는 시청률로 매겨지고 그럼으로써 광고로 환산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잊은 것처럼 생각하는 지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타인에게 벌어진 끔찍한 재앙조차 구경꾼의 시선으로 처리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국내의 한 언론사가 '일본침몰'이라는 제목의 헤드라인 기사를 게재하고, 인터넷 뉴스 창에는 '체육관에 시신이 무더기로...'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걸리고, 한 방송사에서 일본에 벌어진 대참사 앞에 신한류에 있을 차질을 걱정하는 내용의 방송이 나가며, 케이블 채널에서 자연재해 특집 영화를 기획하는 식은 이 구경꾼의 시선이 가진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심지어 한 방송사의 뉴스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 현장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망자의 손 일부를 클로즈업해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그 기자는 그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그 현장 상황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슬픔에 빠져있고, 아직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가족들을 떠올려 봤다면 생각을 달리 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일본 방송의 원거리 촬영과 차분한 목소리, 사망자 유족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방송 태도와는 너무나 상반된 우리네 보도 태도를 비판한다. 쓰나미 때문에 잡고 있던 손을 놓쳐 딸을 잃었다는 한 엄마의 눈물어린 인터뷰는 물론 슬프기 그지없지만 한 뉴스에서만도 몇 번씩 반복해서 보여줄 때는 자꾸만 눈살이 찌푸려진다. 무언가 특종을 잡으려는 것은 뉴스 보도의 속성이지만, 그래도 이건 도를 좀 넘는다는 느낌이다. 어느 정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면 안되는 걸까.

뉴스에서 보도되는 일본 대지진에 대한 방송 내용들을 보다보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시커먼 쓰나미가 가옥들을 집어삼키는 장면 위로 시뻘건 글자로 자막이 들어가면서 시그널이 흘러나오고 거기에 맞춰 격앙된 목소리로 기자가 '쑥대밭'이니 '초토화'니 하는 자극적인 표현을 할 때면 혹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다. 뉴스가 정보전달을 넘어서 하나의 스펙터클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 냉정한 얘기지만 이 일본 대지진을 취재하는 것 자체도 방송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다. 자본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청률을 끄집어내느냐는 단지 드라마나 예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기본은 지켜줘야 한다. 이미 스펙터클의 시대에 들어와 있어 그 누구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저 자극적인 시각만을 보여주는 장면을 넘어서는 따뜻한 방송의 시선이 필요하다. 스펙터클 사회에서 스펙터클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극과 시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공감의 스토리다. 심지어 보도라고 해도 공감은 없고 자극만 있을 때, 대중들은 결국 외면하고 말 것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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