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하, 정 주면 안 되나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25일 편성 중간에 한미정상 기자회견 생방송 중계는 나름 <일밤>에게 힌트가 됐다. 아이돌 스타들이 농촌을 찾아가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꿈엔들’이 한 주 쉬고, 남녀의 문화를 서로 바꿔서 체험해보는 ‘남심여심’ 코너만 방영했는데 이 변칙 편성이 오히려 훨씬 짜임새가 좋았다. ‘꿈엔들’은 <청춘불패>도 힘겨워 하는 상황에 그 아류로 나온 프로그램이라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듯싶다.

이건 누군가에게 기회였다. 공중파 집단 MC체제에서 태양계로 치자면 목성이나 토성 즈음에 자리하고 있지만, 케이블에서는 <식신원정대>와 <식신로드>를 성공리에 이끌고 있는 정준하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1~2%대를 오가는 시청률.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애국가 시청률과 경쟁했다. 물론 종편에서는 일반적이거나 높은 시청률일 수 있으나, 예능의 격전지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의 MBC 간판 예능의 시청률이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뭐라 해명하기도 참담한 수준이다.

‘남심여심’은 정준하, 신봉선 이외에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아직 검증받지 못한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오만석, 윤정희, 틴탑의 천지, 강동호, 최송현, 에이핑크의 은지는 신인이라 할 수 있고, 정선희는 김국진처럼 구력은 좋으나 적응이 필요한 멤버다.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정준하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맘껏 발휘하기에는 오히려 좋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무한도전>의 쩌리짱 정준하였다.

영민한 <무한도전> 제작진과 달리 <일밤> 제작진은 상황만 주고 스토리는 연기자들에게 맡겨버렸다. 그들은 마치 오만석, 강동호, 윤정희 등이 망가지는 모습, 누군가의 눈물과 우정 이런 식으로 뽑아내야 할 장면 목록만 가져온 듯하다. 그렇다보니 한 시간이 넘는 방영시간을 꿰는 스토리가 없다. 리얼 버라이어티 중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가진 <런닝맨>과 <1박2일>을 보면 콘셉트와 스토리 하에 게임이 있다. 누군가를 잡는 과정이 게임이 되고, 잠자리나 저녁 식사를 놓고 경쟁하는 게 주요한 스토리가 된다.

하지만 ‘남심남녀’는 남자들이 문화센터체험을 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취미인 민물 낚시하러 간다. 이게 끝이다. 중간 중간에 심심하지 않도록 사이다 마시고 트림 참기, 구운 계란 머리 깨기, 맨손으로 지렁이 꿰기 등 맥락과 의미가 없는 게임을 배치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저예산 케이블예능의 MT식 리얼 버라이어티의 방정식이다. 물론, 워스트 멤버 선정을 하긴 하지만 선정과정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 다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싱거운 볼거리일 뿐이다.

상황과 콘셉트에서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개별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에피소드는 캐릭터 간의 갈등과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난다. 이것이 집단 MC체제의 리얼 버라이어티가 갖는 특징이다. 그런데 이 상호작용이란 것이 각자의 개성을 특출 나게 뽐내는 것보다, 적재적소에서 끌어내고 띄워주고 죽여주는 메인 MC의 지휘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이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정준하와 정선희였다. 여자팀의 정선희는 여러 멤버들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멤버들 간의 역할 분담을 정리하고 있지만, 정준하는 자신의 역할에 소극적이었다. 멤버들과 대화를 통해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시청자들에게 소개해주고, 그들끼리 엮으려는 노력도 거의 없었다. 다른 멤버들보다 더 웃기게 몸개그를 펼칠 뿐이다.

정준하는 옆에 누군가의 보조를 받아야 증폭되는 유형의 MC다. 그는 누군가 항상 무안을 주고 눌러주거나 바보 같다고 칭찬해야 빛을 본다. <무한도전>에서는 유재석과 박명수가, <식신로드>에서는 현영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 특유의 넉살은 건들거림과 바보스러움의 경계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반말로 큰소리치며 “최 코디!”를 외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도 유재석이 개그코드로 승화시켰기에 망정이지, 사실 불편할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남심여심’에서 짧은 순간이었지만 반말로 손짓을 하며 코디랑 매니저를 찾는 모습이 나왔다. 춤을 추는데 모자가 불편하니 다른 걸로 바꿔오라는 거였다. 이게 웃긴 장면이라고 넣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준하가 더 큰 역할을 맡으려면 버려야 할 장면인 것은 확실했다.

지휘자 역할을 하는 강호동과 유재석은 카메라 앞에서 항상 깍듯한 것은, 그들이 그 안에서는 조물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비호감이 된다면, 그로 인해 파생하는 모든 스토리와 갈등이 비호감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고, 설득력을 잃는다. 그들이 부여하는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 또한 지지와 공감을 받기 힘들어진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제작진과 마찬가지로 정준하 또한 자신의 캐릭터와 역할에 대해 아무런 준비 없이 합류한 것 같다.

바보 같지만 따뜻하고 통 큰 남자라는 이미지는 충분히 멤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하지만 여자팀은 정선희가 중심을 잡고, 각자 멤버들에게 애정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것에 비해 남자팀의 진행은 오만석이나 브라이언이 이끌어 갈 정도로 정준하는 관계에 있어 소극적이었다. 지금과 같아선 간헐적인 몸개그가 터져 나올 수는 있지만 캐릭터가 만드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친밀감을 만들기는 요원해 보인다.

‘남심남녀’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최소한 시청률보다는 재미있다. 하지만 첫 방송의 파자마 파티도 그렇고, 민물낚시나 문화센터가 남녀의 일반성을 반영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니 공감 도 못 사고, 캐스팅만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하기도 부족하다. 한 멤버는 “멤버들과 만나고 방송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 일주일이 정말 기다려진다”며 눈물을 보였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이 체험한 낚시터의 강태공처럼 느긋하지 않다. 시청자들도 그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편성표 바로 옆에 포진한 프로그램들처럼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친밀감을 만들어야 하고, 초반 가장 큰 책임은 정준하에게 달려 있다. 좀 더 애정이 필요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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