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현정, 차라리 진흙투성이가 되라
- 이경규를 배워라, 주병진 말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고쇼>가 신선했다고? 글쎄. 토크의 흐름 자체가 휴머니즘을 강조하거나 한 시간 내에 감정의 희로애락을 모두 맛보려 하지 않은 점에서는 그럴 수 있다. 유행하는 잔잔한 위로 콘셉트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조된 토크쇼를 구상한 점에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승승장구><주병진쇼>를 능가하는 재미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리모콘을 그냥 놔두기에는 어수선했고, 조금 불편했다. 그 이유는 감히 말하자면 ‘고현정을 모셨기’ 때문이다. 웃음을 위한 장치와 토크가 고현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몇 배는 더 정갈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토크쇼의 본질은 어쨌든 두 가지다. 수다가 재미있거나 무대 위에서 볼 수 없었던 셀러브리티들의 진솔하고 색다른 모습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거나. <고쇼>의 경우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이 본질의 측면에선 다른 흔한 토크쇼와 별반 다른 게 없었다. 여전히 연예인 친목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예능에 욕심내는 조인성의 모습 외에 딱히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고쇼>는 앞서 말한 본질 중 셀러브리티의 색다른 모습이란 측면에선 퇴보했다. 무대 위의 배역과 알려진 실제 캐릭터가 거의 비슷한 고현정을 게스트보다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고현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된 이후, <여배우들> <대물>(정확하게는 이 드라마로 대상을 받은 시상식)을 거치면서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그녀는 자신의 실제 캐릭터를 바탕으로 극의 배역을 구현해낸다. 배우 중 비슷한 유형으로는 김부선과 최민수가 있고(이 둘은 전혀 서로 다른 과정과 의미로 구축됐지만), 고현정과 비슷한 이미지의 선배 격으로는 김혜수가 있다.

배우 고현정의 애티튜드는 겸양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레전드의 귀환에 걸맞은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을 질곡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고 우리 곁에 다시 온 사람이란 긍정적 이미지가 고현정의 카리스마를 더욱 단단하고 수긍하게 만들었다.

<고쇼>는 이 고현정의 캐릭터를 토크쇼의 무대로 가져왔다. MC인 고현정에게 이런 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카리스마 넘치는 ‘여배우’가 털털하게 말하고, 정색하거나, 화통하게 웃는다고, 방청객처럼 시청자들이 열광할 거란 기대는 착각이다. 고현정의 감정 변화가 과연 흥미의 요소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카메라는 이 변화의 순간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한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고현정의 얼굴과 방청객의 웃는 모습을 교차한다. 그녀는 웃음을 생산하는데 관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MC가 예쁘다고 한들, 토크쇼라면 MC보다 게스트에 집중해서 대화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녀가 쌓아온 이미지와 그를 소비하는 제작진의 방식이 결합해 고현정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패널과 게스트는 물론, 카메라, 자막, 방청객의 박수가 고현정에게 몰린다. 그러니 억지가 생긴다. 감정의 기승전결은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맥락은 안중에도 없다. 어수선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일반인 닮은꼴 등장하는 코너 같은 경우 어떻게 해도 고현정을 보여줄 수 없었다. 결국 결론을 어찌 낼 줄 모르고 산만, 그 자체로 마무리된다.



따라서 이 토크쇼는 고현정의 쇼가 아닌 고현정을 위한 쇼다. 현재, 1회만 놓고 보면 기획 자체가 그렇다. 모든 것의 귀결은 고현정. 첫 회 게스트로 그녀의 연애스캔들의 상대방이었던 천정명과 조인성이 함께 나왔는데, 두근두근 거리는 이 캐스팅도 알고 보니 선정성이 아니라 큰언니, 혹은 털털한데 엄청 예쁜 누나, 가장 친한 선배 고현정이란 수준의 친분 캐스팅이었다. 그 다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다.

<고쇼>가 더 재밌어지려면 제작진의 기획방향부터 고현정을 위한 쇼가 아닌 고현정의 쇼로 콘셉트를 바꿔야 한다. 1회처럼 고현정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박중훈, 주병진 쇼가 시작부터 흔들린 까닭과 자기를 완전히 지운 <승승장구>의 김승우와 <힐링캠프>의 이경규의 차이를 참조해볼 만하다. 고현정 또한 무채 써는 변덕규가 “진흙투성이가 되라”라는 명대사가 담긴 <슬램덩크> 21권을 다시 한 번 들춰봐야 할 것이다.

<고쇼>는 분명, 흥미로운 토크쇼다. 히팅 지점이 도처에 있는 만큼 욕심을 많이 내는 게 이해된다. 우선 기존 토크쇼가 재미없어진 이유를 잘 알고 피하려고 했다. 최근 론칭한 다른 토크쇼와 확연하게 차별되는 지점이다. <고쇼>는 연예인들의 성공신화를 눈물 흘리며 감동하지 않는다. 웃음부터 눈물까지 감정을 전시하지 않는다. 워낙에 부침이 많은지라 무뎌져서 그렇지 시청자들의 인생이란 누구나 TV속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고 있다.

응원은 무슨, 심지어 지켜보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 위안을 받고 싶으면 받고 싶지 나와 달리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흘릴 눈물이 없단 말이다. <고쇼>는 이런 성공담 등을 배제하고 일단 재밌는 토크쇼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리고 예능에서 보기 힘든 연예인이 나왔다고 일방적으로 띄워주지 않는다. 식상함의 측면에서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 지점 또한 고현정과 충돌이 이는 부분이다.



성공한 토크쇼의 보조MC 윤종신과, GD에게 옷으로 시비를 거는 등의 맥락 토크를 구사할 줄 아는 센스 있는 정형돈, 언제든 혼자서 웃음을 터트릴 수 있는 히트맨 김영철까지 그녀를 보좌하는 패널진은 제작진의 뛰어난 촉을 가늠할 수 있는 최고의 캐스팅이다. 그들은 산만하지만 재밌는 토크쇼라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고현정도 자신이 이끌어가지는 못했지만 자의반 타의반 토크의 허브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앞으로 어수선한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고현정을 지금처럼 부각시키는 게 핵심이라 생각한다면, 어수선한 장치들 또한 고현정을 기준으로 정리하려고 들 것이다. 고현정을 보여주는 게 우선일지, 웃음 속에 고현정이 있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스타마케팅으로 프로그램이 성공한 예는 월드스타를 포함해도 없다. 또한 토크쇼는 결국 사람 이야기다. 단 1회 방영을 한 프로그램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만 누군가를 계속 띄워준다면 상식적으로 쉬이 지루하고 피로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첫 회. <고쇼>가 내딛은 한 발에 수많은 자잘한 가능성과 한 가지 큰 아쉬움을 남겼다. 앞으로 더 진일보한 토크쇼를 위한 변증법의 과정일지, 버라이어티와 토크의 결합이라는 간판만 현란한 퓨전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이 될지, 그 열쇠가 고현정, 정확하게 고현정의 활용에 있다. 재밌는데 어수선하다는 것은 결코 코너와 구성의 문제가 아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아이오케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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