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스트셀러, 영화로 만든다고 무조건 대박날까?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출판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해만 해도 김탁환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470만,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가 530만이라는 뜨거운 흥행을 기록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460만명, 그리고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산 애니메이션으로는 역대 최대 스코어인 220만명의 기록을 갖기도 했다.
올해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 원작인 <화차>가 2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박범신 작가의 <은교>가 현재 12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을 가세한다면 더욱 많은 작품들이 원작에 힘입어 흥행을 기록한 셈이다. 올해 개봉작 중 소설을 원작으로 한 극장용 상업 장편 영화 중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작품은 김탁환 작가의 <노서아 가비>를 원작으로 한 <가비> 단 한 편 뿐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할리우드는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소설, 고전 원작 소설, 혹은 그래픽 노블이나 출판 만화에 이르는 출판물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왔다. 마블 코믹스의 출판 만화를 바탕으로 한 <어벤져스>는 역대권 안에 들어갈만한 흥행 성적을 보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낸 <헝거 게임> 역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또한 어린이날 극장가를 깜짝 점령한 <로렉스> 역시 유명 동화 작가 닥터 세우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출판물 원작의 작품이 흥행으로부터 거리가 멀었던 경우가 있다. <존 카터: 바숨 전생의 시작>이 대표적인 예다.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미 검증된 스토리텔링’을 영화로 옮기는 것은 기획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매우 안전한 작업이다. 일단 대중에게 한 번 노출돼 뜨거운 반향을 얻어냈다는 결과물을 지니고 있는 스토리라인이라면 아직 그 반응을 알 수 없는 스토리라인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획 라인’을 손쉽게 통과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 기획 라인이 가장 모험을 하지 않는 경우가 바로 ‘탄탄한 원작을 지닌 경우’다. 그 다음이 뛰어난 흥행 기록을 지닌 전작이 많은 감독이 써 낸 오리지널 시나리오, 그 다음이 그런 시나리오 전문 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그 외의 작품들은 기획적인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기획적인 편의성에 대한 유일한 장애물은 바로 ‘원작 판권료’라는 부분이다.
사실 ‘원작 판권료’는 전체 제작비 중에서 얼마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작료가 없는 영화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제작비로에 추가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 소설의 원작 판권은 사실 ‘큰 돈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영화화 판권료’는 ‘의외의 용돈’ 정도의 개념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가 되고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아내가 결혼했다>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영화들이 안정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 ‘소설 원작 영화’들의 기획은 더욱 힘을 얻었다. 예전에는 ‘원작 판권료’가 그냥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미리 잡아놓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기획이 늦춰지고 투자가 진행이 되지 않거나 캐스팅이 진행되지 않아, 소위 업계 용어로 영화가 ‘엎어지는’ 경우, 계약서에 명시된 영화화 판권 기간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다른 기획자가 판권을 재구매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5천만원에서 1억원, 그리고 러닝 개런티 등의 옵션이 붙는 경우도 많다. 이쯤 되면 계약 기간이 지나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할 정도의 투자가 아니다.
아직 촬영중이거나 제작/기획 단계인 소설 원작의 작품들 중 가장 큰 기대를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다. 추리 소설과 스릴러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독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서사가 일품인 이 작품은 영화사 펀치볼이 판권을 구매해 제작 진행 중이다. 10개 회사 이상이 판권을 구매하기 위해 애썼고 그중엔 수많은 흥행작을 기록한 중견 감독의 회사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 <올드보이>의 투자 책임을 맡았던 대표의 회사인 영화사에 판권이 가게 된 것이다.
<7년의 밤>이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치열한 서사와 현실적인 캐릭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자유롭게 담아낸 로케이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기획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영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쉽게 생각해내지 못하는 스케일을 정유정 작가는 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원작 소설을 지닌 영화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장점은 ‘기존 기획자들의 필터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서사’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영화화 대기중인 베스트셀러 소설로는 <완득이>의 김려령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우아한 거짓말>이나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7년의 밤> 정유정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내 심장을 쏴라>를 들 수 있다. 현재 제작이 진행중인 작품들 중 해외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도 많다.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는 드 라클로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이미 우리에게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를 통해 한 번 전해진 적이 있다.
<화차>로 일본 소설 원작의 흥행이 가능함을 보여준 이후로 <남쪽으로 튀어>를 임순례 감독이 만들고 있으며 <용의자 X의 헌신>을 바탕으로 한 <완전한 사랑> 역시 방은진 감독을 앞세워 제작 진행중이다. 우연하게도 <화차>의 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이 세 일본 소설 원작의 영화들은 모두 여성 감독의 작품들이다.
‘검증된 베스트셀러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다는 모든 기획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특히 영화화로 검증된 작가의 다음 작품이 제작진으로부터 어떻게 만들어질 것이며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의 예상은 쉽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조선명탐정>으로 특급 히트를 했던 김탁환 작가의 <노서아 가비>는 처참한 흥행 스코어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냥 베스트셀러를 영화화 한다고 모두 흥행작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매우 단순한 진리로부터 출발하는 부분이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은교>, <화차>,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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