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만,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 절대 폭주하지 않는 남자, 김병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병만은 현 시대에 그리 썩 어울리는 개그맨이 아니다. 김병만의 코미디 철학은 고전적이다. 그의 자신의 개그철학을 누구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슬랩스틱으로 못을 박고 고난도 아크로바틱을 구사한다. 그러나 현재 슬랩스틱은 정통 코미디의 한 원형일 뿐, 이미 예전에 웃음의 유발은 그런 말초적인 단계를 넘어섰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예능은 물론이요, 옥동자로 대표되는 개인기 위주의 코미디언들이 공개 코미디의 무대를 김원효, 최효종, 박성광 등의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재치 있는 후배들에게 내 준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의 방증이다. 박명수가 자신만의 개그를 꾸준히 추구하다가 2000년대 중반 시대의 흐름이 그에게 손짓을 하고 다가왔던 케이스와는 같지만 다른 것이 김병만은 꾸준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며 자신의 영역을 확보했다.

김병만은 <개그콘서트>에서만 40개 이상의 코너를 진행했지만 대부분 단명했다. 그런데 화산섬에서 내뱉은 “사람은 정말 잡초같은 사람이 되어야 해.”라는 말이 진리임을 증명하듯 그는 잡초처럼 살아남았다. 시계 바늘의 반대방향으로 꾸준히 달려서(그의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기어가서) 김병만 코미디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시대적 흐름으로 보자면 마이너 감성이지만 워낙에 독보적이라 모두가 연기대상을 꼭 받았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그것이 바로 지난 5년간 독보적인 자기의 영역을 확보한 아크로바틱 코미디의 ‘달인’에 대한 시청자들의 예우였다.

그런 달인이 주말예능에 입성했다. 일요일 저녁으로 옮겨온 <정글의 법칙>의 높은 시청률이 의미하는 것은 이 달인이 새로운 미션에 도전하고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만은 누구보다 미션에 잘 어울리는 코미디언이다. 목표를 정해놓고 수행하는 과정은 김병만 코미디의 중추다. 2000년대 초반에 <개콘>의 무림남녀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작해 5년간 매주 새로운 미션을 수행했던 ‘달인’을 거쳐 평소 존경하던 찰리 채플린으로 변신해서 화제가 된 <키스앤크라이>의 피겨스케이팅까지 그는 계속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했다. 김병만이 주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도전의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는 대중들에게 한 번도 폭주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태도는 웃음을 만드는 과정의 노고까지 웃음과 감동으로 연동하게 만든다.

이러한 김병만의 이름을 내건 <정글의 법칙>의 형식은 리얼 버라이어티이지만 기존의 성공 공식(게임과 상성관계가 있는 캐릭터 구축)과는 전혀 다른 길로 들어서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 PD가 전면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현 예능 추세와 엇비슷한 점이 없다. 다큐+예능이라는 출발선답게 웃음의 측면에서는 매우 건조하다. 거기다 착하다. 게임을 하고 복불복을 하고 누가 승자가 될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거듭나고 서로 보듬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이 착한 리얼 버라이어티가 자리를 잡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김병만이란 앞서 설명한 진정성이라는 그만의 브랜드와 함께 그가 유재석과 강호동이 닦아놓은 길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진행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외의 정글을 찾아간 볼거리, 김병만의 해결사 능력 지켜보기 그 외에 설명할 길이 없던 <정글의 법칙>의 매력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다.



병만족은 가족이다. 영국의 생존왕 베어 그릴스가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이드라면 김병만은 불시착한 어느 오지에서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이자 듬직한 가장이다. 유재석이나 신동엽처럼 누군가 합을 맞춰줄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고, 강호동처럼 병풍을 둘러 세우지 않아도 된다.

김병만은 다른 이들에게 시키지 않는다. 솔선수범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힘든 노동은 혼자서 담당한다. 그는 항상 중심에 있으면서도 다른 출연진과 제작진까지 돕는다. 자기가 먼저하고 어려움을 나서서 해결하다보니 리키나 추성훈 등의 다른 멤버들이 그를 도우면서 난관을 풀어나간다. 상황이 있고, 믿는 리더가 있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할 필요가 없다. 뭉쳐야 산다. 그 선의의 코미디를 가능하게 한 것은 김병만이 깔아놓은 바닥 위에서 캐릭터가 구축되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에게는 달인의 아크로바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상황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이 감동의 실체도 아니다. 김병만에게는 지금까지의 리얼 버라이어티의 캐릭터들이 갖지 못한 어른스러움과 겸손이 있다. 그렇기에 병만족은 키 작은 그를 믿고 서로 의지하며, 생활을 꾸려간다. 이는 그의 절친인 이수근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이수근은 주목을 받아야 하는 장난꾸러기다. 그는 엉뚱한 상황을 연출하거나 자신을 중심으로 대화의 화살표를 이리저리 보내야 웃음을 만들 수 있는 코미디언인 반면 김병만은 어디에 서 있든 나서기보단 뒤를 받쳐주는 자연과도 어울리는 코미디언이다.

따라서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의 웃음의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병만은 웃음이라는 결과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코미디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연금술을 행한다. 이 연금술이 가능한 것은 코미디에 대한 그의 뜨겁고도 겸손한 태도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각종 미션들과 직면하는 <정글의 법칙>은 그가 십여 년간 몸담은 <개콘>보다도 김병만의 연금술이 그대로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나아가 정글에서의 또다른 도전은 김병만만의 독특한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어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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