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수 감독, 이럴거면 칸에 왜 갔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앞에서도 몇 차례 말했지만, 나는 <돈의 맛>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다. 비록 임상수의 섹스신과 세트 집착은 지겹고, 그의 까불까불 농담은 내 취향이 아니며, 영화 역시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깊이 있는 사회 비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난 여전히 그 영화를 즐겁게 봤다. 임상수가 듣고 싶은 방향이 아닐지는 몰라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인 이야기를 꽤 오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21일에 받은 ‘<돈의 맛> 칸영화제 수상 유력 징후 포착!’이라는 보도자료의 제목은 어리둥절했다. 몇몇 받아쓰기 기사에 내용 대부분이 소개된 이 글은 네 가지 이유를 들어 <돈의 맛>이 칸에서 무슨 상이라도 반드시 가져올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임상수의 두 번째 칸 진출작이고, 집행위원장의 극찬을 받았고, 폐막 전 날에 상영되고, 심사위원장 난니 모레티도 사회파 감독이고...

이건 정말 괴상한 언론 플레이다. 그 보도자료가 나온 순간에도 임상수가 칸 영화제에서 무언가를 챙겨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작 리스트에서 감독 이름들을 보라. 하네케, 앤더슨, 가로네, 로치, 크로넨버그, 레네, 카락스, 오디아르... 임상수는 한참 밀린다. 상 받을 생각 전혀 하지 않고 건들건들 놀러 간 홍상수에도 밀리는 건 마찬가지다.

보도자료의 다른 논리도 마찬가지로 어색하다. 난니 모레티가 사회파 좌파 감독인 것은 맞지만 <돈의 맛>이 그의 취향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설마 베를루스코니 밑에서 몇 년 고생한 걸 가지고 동변상련을 기대했던 건 아니겠지? 집행위원장의 극찬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그런 말들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데. 그리고 폐막 전 날 상영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떤 귀납적 추론을 따른 거지?

물론 보도자료들은 과장을 한다. 독자들과 관객들에게 그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하지만 <돈의 맛>의 홍보의 효용성은 수상쩍다. 배급사인 롯데에서 항공비와 숙박료를 몽땅 제공하며 40명의 영화기자들을 칸으로 데려온 것부터가 그렇다. 물론 기자들이나 회사에서는 돈을 절약할 수 있었으니 좋았겠지. 하지만 그게 홍보에 무슨 도움이 될까?

기자들이 ‘7분간의 기립박수’를 보도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것은 당연히 보도되어야 할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미 칸 뉴스에 훈련된 독자들은 칸에서 기립박수와 야유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올해 칸에서 만만치 않은 악평을 받은 <페이퍼 보이>도 10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기사를 읽고 알았다. 우리만 기립박수 보도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 쪽에서도 기립박수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쇼였던 거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롯데에서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국내 기자들의 취재를 도우려고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오히려 노골적인 부작용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온다. <다른나라에서>를 들고 갔다가 상 못 받고 돌아온 건 홍상수도 마찬가지지만, <다른나라에서>에 대한 입소문은 여전히 괜찮다. 하지만 <돈의 맛>의 이미지는 칸 홍보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꾸준히 하락해갔다. 상을 아무 것도 못 받은 지금은 최악이다.

이것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시상식 다음에 임상수가 줄줄이 한 인터뷰들은 가관이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대충 이런 생각이 든다. (1) 세상에. 이 양반은 보도자료의 내용을 진짜로 믿었나 보다! (2) 세상에. 이 사람은 칸영화제가 반드시 이기고 돌아와야 할 전쟁터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임상수는 이 상황을 ‘비극’이라 표현했다. 밖에서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혹평을 하고, 국내에서는 다음 작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흥행이 안 된다는 상황을 가리킨 것인데... 역시 어리둥절하다. 임상수의 지금 상황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딜 봐도 비극 같은 건 안 보인다.



그건 칸에 간 다른 한국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한 번 볼까? 우선 홍상수는 처음부터 수상 따위는 기대하지 않고 갔다. 홍상수의 영화는 영화제에 자주 초대되긴 해도 정작 상 받기는 어려운 종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화제에서는 더 진지하고 묵직하고 심각한 영화에 상을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홍상수는 칸에서 단단히 본전을 뽑아가지고 왔다. 지금까지 20개국과 배급 계약을 맺었단다. 아마 위페르의 힘이겠지만, <다른나라에서는> 미국에서 제대로 개봉되는 최초의 홍상수 영화가 될 것이다.

상을 받은 영화도 있다. 비평가주간 단편부문에 초청된 신수원 감독의 <써클라인>이 ‘카날플뤼’(Canal+) 상을 받았다. 본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던 거다. 비경쟁이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을 밟은 <돼지의 왕>의 반응도 좋았다.

이렇게 보면 역시 꽤 만만치 않은 배급 계약을 맺은 <돈의 맛>도 빈손으로 돌아온 건 아니다. 칸 데일리의 비평가 평점은 최악이었다지만, 그건 칸 영화제의 기립박수나 야유처럼 분위기를 심하게 타는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진짜 평가는 영화제 이후에 쌓이는 거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국내 흥행? 지금처럼 롯데에서 지지해주고 있는 이상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도대체 비극이 어디에 있는데? 어차피 칸 영화제에 온 사람들 중에는 빈손으로 가는 사람들이 상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그들에게 수상실패가 모두 비극이라면 칸 영화제는 거대한 장례식장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지 않은가.

이미 임상수는 칸에서 할 건 다 했다. 자기 영화를 전세계 관객들 앞에 틀었고, 유명 인사들과 사교질도 했고, 기자간담회 때 MB도 한 번 깠고, 칸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왔다. 아, 올해 칸은 날씨가 별로이긴 했단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시무룩할 이유가 될까.

같이 칸에 간 <돼지의 왕> 배우들의 트위터를 보니, 그 사람들은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레드 카펫도 밟고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셀카도 찍고 스타들도 구경하면서 신나게 논 모양이더라. 칸은 휴양지이고 영화제는 축제이다. 그냥 좀 즐기고 가면 안 되나? 그럴 기분이 아니더라도 그런 흉내라도 내는 게 옳지 않나?

임상수의 반응이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혹시 위악적인 놀이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렇다면 감독 이름과 장르가 괴상하게 꼬이는 놀이일 것이다. 임상수의 지금 태도는 임상수 영화보다 홍상수 영화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홍상수 영화 속의 영화감독들에 몰입하며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재미있다면 그라도 즐기면 된다. 하지만 그런 놀이가 어떤 도움이 되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직 <돈의 맛>은 상영 중이고, 지금 이 상황에서 감독과 회사의 임무는 이 영화를 만든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해서 영화를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상수의 지금 행동은 여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깐죽거리는 유머를 계속 방해한다. 농담꾼은, 그것도 자학적인 농담꾼이 아니라 풍자가라면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작품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상수의 지금 인터뷰들은 영화 흥행, 아니 영화 자체에 방해만 될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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