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가장 잘 나가는 MC 정형돈의 성장史
- 정형돈, <무한도전> 결방에 대처하는 방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형돈은 현재 잘나가는 MC다. <고쇼> <닥터의 승부><옴므3.0>, 한 달에 재방송이 워낙 많아 24방을 튼다는 <주간아이돌> 등등의 프로그램에서 MC로 맹활약을 하고 있거나 했다. 그런데, 그의 활약상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한들 <무한도전>을 빼놓고는 정형돈을 설명할 수가 없다. 진상댄스와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을 넣어 부르는 노래, 갱스터랩과 댄스, 패션 전문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맥락까지 정형돈의 모든 것은 <무한도전> 내에서 삭혀서 만들어낸 묵은지 김치와 같다.

정형돈이 갱스터랩을 표방한 음반 <껭스타랩 볼륨1>을 냈다. 그의 절친이자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의 공동MC이기도 한 힙합가수 데프콘과 함께 형돈이와 대준이란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한 것이다. 반응도 폭발적이다. 물론 그냥 코믹 콘셉트의 재밌는 음반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정형돈이란 코미디언에게 있어 그리고 <무한도전>의 팬들에게 이 음반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색한 뚱보, 존재감 없는 캐릭터에서 미존개오의 시대를 연 출발점이 바로 2009년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의 갱스터랩퍼 MC빡돈이기 때문이다.

때는 2009년 여름, 당시 진상으로 어느 정도 상승세를 타던 정형돈(a.k.a MC빡돈)은 박진감 넘치는 비트 위에 혼신을 다해 “mother father give me a one dollar. 엄마, 아빠 천이백 원 주세요, 엘리뇨 라니뇨 WTO 예~”를 외쳤다. 거친 육성과 대비되는 예의바름, 운율보다 당시 환율을 정확히 반영하는 세심함, 부모자식간의 미시적 이슈에서 국가를 넘어 환경과 세계경제라는 거시적 이슈로 확장되는 점층법까지 맛보기로 공개한 전자깡패의 한 소절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스튜디오에 있던 출연자들은 그 파격과 난해함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때 이 장면이 훗날 정형돈이란 웃음폭탄의 도화선이었다는 것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뒤집어진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명수다. 그는 족발당수를 처음 본 5년 전에도 유난히 자지러지면서 똑같은 말을 남겼다. “야 이거 진짜 웃긴다.” 그리고 그답게 탐냈다.

전자깡패가 나온 2009년은 정형돈에게 매우 뜻 깊은 해이다. 갱스터랩을 비롯한 음악적 재능을 시청자들에게 알린 것도 있지만 <무한도전>의 높아진 인기에 비례해 다른 멤버들이 훌쩍 성장해버린 것과 달리 평균보다 모자란 남자의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무한도전>의 콘셉트에 가장 잘 맞는 멤버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물론, 푸근한 외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형돈은 집을 공개한 몇몇 특집을 통해 경악스러운 생활상을 시청자들에게 알렸고 2008년 사오리와 가상부부로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진상 추태를 다시 한 번 선보이며 진상이 콘셉트가 아니었다는 진정성을 부여받았다. 이후 <롤러코스터>에서는 숨겨둔 연기력을 선보이며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배 나오고 아무거나 대충 입는, 딱 보통 남자다운 정형돈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인간적이면서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이니 노안선발대회 특집에서 “6학년이 웃겨?”하고 소리치고, <스타골든벨>나가서 걸걸한 목소리로 때려 치라고 진상을 부려도 밉지 않았다.

한마디로 문화적 소양, 첨단을 걷는 센스, 고고한 취향과는 거리가 먼 듯한 전형적인 아저씨가 갱스터랩이니 패션을 논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은 코미디가 됐고 그것은 캐릭터가 됐다. 미존개오의 탄생. 그리고 그 이후는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다.

그렇다고 편집점 정형돈에서 드레스코드만으로 웃기는 정형돈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다. 드라마틱은 정형돈과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가 인기를 얻는 과정은 가방 버클에 곰팡이가 피기까지의 화학 반응처럼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진행됐다.

지난 2008년 미팅 특집에서 노홍철에게 날렸던 분노의 족발당수 장면에다 제작진은 자막을 통해 ‘분기마다 한 번씩 웃겨주는구나’라는 어색한 칭찬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MC빡돈의 전자깡패를 내놓기 전까지 정형돈은 간신히 안 웃기는 캐릭터를 잡은 것 외에 웃음을 선사한 적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는 음악관련 특집에서 유난히 빛을 발했다.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에서 진상 캐릭터를 얻었고, 길과 결성한 뚱스에서는 힙합에 대한 관심과 재능을 드러냈다.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준비하는 자리에서 부른 ‘늪’은 사람들을 웃음의 늪에 빠뜨렸다. 이때 터진 유행어가 바로 그 유명한 “GD, 보고 있나?”이다.



정형돈의 이번 음반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유머러스한 가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무한도전> 속에 정형돈이 만들어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비주얼을 내세운 앨범 자켓은 누가 봐도 그냥 아저씨인데 정작 본인은 아티스트이자 패셔니스타라고 박박 우기는 <무한도전> 속 정형돈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즘은 <음악의 신>과 같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UV나 용감한 녀석들처럼 방송과 현실을 넘나드는 콘텐츠가 나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방송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콘텐츠가 엄청난 시너지의 가능성과 성과를 동시에 보여준 첫 번째 사례는 바로 <무한도전>의 ‘하나마나’ 특집이었다. 연세대 축제 공연은 그중에서도 백미였다. 그 후 <무한도전>은 TV 앞에서만 보는 것으로 끝나는 방송이 아니라 사진전, 달력, 음반 등등의 컨텐츠를 통해 시청자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고,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음반 또한 바로 이런 <무한도전> 소비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방송될 수 없는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이번 앨범 발매는 <무한도전> 팬들의 심각한 갈증을 풀어주는 훌륭한 이온음료가 런칭한 것과 비슷하다. 장르 또한 갱스터랩이고 가사 또한 답답한 현실을 날려줄 만하니, 덥고 답답한 이때 딱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데프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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