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혜진을 퇴장시킨 괴상한 결정타
- 심혜진, <선녀> 하차가 전혀 놀랍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TV낙서판] 심혜진이 지금까지 출연해왔던 시트콤 <선녀가 필요해>에서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심혜진은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이며 심지어 타이틀 롤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 종영을 한 달 남긴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하차한다는 것은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심혜진 측에서는 지금 방영 중인 종편 드라마 <해피 엔딩>의 촬영 일정과 개인 사정이라고 하지만, 심혜진과 제작진 사이에서는 캐릭터와 스토리 전개 방향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할까? 그럴 생각은 없다. 이들의 사정에 대한 직접 정보가 없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이 사정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주는 것이다. 정말 촬영 일정과 개인 사정 때문일 수도 있고, 양측의 갈등이 밖에서 보이는 것만큼 부정적이기만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사실이 무엇이건, 이 상황이 전혀 놀랍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고백해야겠다. <선녀가 필요해>를 지금까지 꾸준히 챙겨본 시청자들 중, ‘심혜진은 지금 무지 갑갑하고 불만스럽겠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 손들어보시라. 거의 없을 것이라 믿는다. 이 시트콤이 시작했을 때 심혜진은 당당한 두 주인공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 캐릭터는 점점 존재 의미를 잃어버렸고, 가벼워져만 갔다.

그 중 가장 괴상한 결정타는 남자 주인공 차인표의 캐릭터와 러브 라인이 맺어진 배우가 심혜진이 아닌 황우슬혜라는 것이었다. 하긴 황우슬혜도 아주 파릿파릿하게 젊은 배우는 아니니, 현실 세계에서 차인표와 연결되어도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차인표가 우리와 박민우의 아버지이고 심혜진의 딸과 사귀는 상황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심혜진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결코 좋아 보이는 그림이 아니다.

하긴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시트콤 내의 상황이 아니라, 차인표의 캐스팅 자체이긴 하다. <선녀가 필요해>에 차인표가 캐스팅 된 건 그가 정극에서 하는 연기와 대외 의미지가 은근슬쩍 희극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흔히 하는 계산 착오이다. 코미디 연기는 그 무엇보다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며, 여기에는 단순히 대외 이미지가 웃긴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슬픈 일이지만, 차인표는 오직 정극 연기를 진지하게 할 때만 웃기다. 그가 코미디를 하기 위해 혼신을 다해 ‘망가지는’ 모습은 우습기보다는 애처롭다. (여기서부터는 일반론이지만, 제발 ‘망가지는’ 연기를 과대평가하지 말자. 그것은 캐릭터에 도달하기 위한 수많은 도구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 매스컴에서는 배우가 ‘망가지는’ 역을 하면 연기를 위해 팔다리를 하나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배우들이 트레이닝 복 입고 양푼 비빔밥을 먹으면 없던 내용이 저절로 나오나?)



더 나쁜 것은 이 시트콤에서 차인표와 의미 있는 화학 작용이 느껴지는 배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황우슬혜와 차인표의 러브 라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 나이차 때문이 아니라, 두 배우의 그림이 전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괴상한 일이다. 황우슬혜는 캐릭터의 성격상,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과 화학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관계가 재미있는 것은 잠시 연적이었던 윤지민 캐릭터와의 이야기였고, 이준이나 최정원과도 괜찮았다. 그런데 작가들은 황우슬혜를 가장 느낌이 없는 차인표에게 몰고 간다. 당연히 어색하다.

하긴 이 시트콤에서 느낌이 없는 러브라인은 황우슬혜-차인표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차인표의 딸로 나오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시작부터 죽어있는 러브라인에 빠져 있다. 이 캐릭터도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시트콤 초반에 우리의 캐릭터는 신우라는 모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가능성 있는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중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역시 모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허영생 캐릭터가 들어간 새 러브라인에 자리를 내주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시간이 남아도는 한류 아이돌이라는 허영생 캐릭터가 있을 자리가 전혀 없으며, 우리와의 그림도 나쁘다는 데에 있다. 신우의 캐릭터가 퇴장하는 에피소드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 어색한 삼각관계의 승자가 허영생이 아닌 신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도, 허영생의 캐릭터는 러브라인이 본격화된 지금에도 하찮은 서브남주처럼 보인다.

슬픈 일은, <선녀가 필요해>에서 이런 어색한 단절과 말도 안 되는 관계는 시트콤 시작부터 거의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시트콤을 만드는 사람들은 두 선녀에게 어떤 헤어스타일을 주고 어떤 옷을 입히는지에 대해서도 시트콤 중반까지 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선녀의 설정과 캐릭터에 대해서는 더더욱 분명한 의견이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내리는 선택은 모두 최악이거나 차악이다. 당연히 우리와 같은 시청자들은 이런 선택에 자연스러운 스토리의 논리가 아닌 다른 것들이 꾸준히 개입되었다고 믿게 된다. 그렇다면 심혜진의 일탈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선녀가 필요해>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이 정기적으로 목격했던 수많은 이상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아쉬운 일이다. 나는 <선녀가 필요해>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 시트콤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란체스카> 1,2시즌의 시청자였던 (3시즌은 차마 감당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고 신정구 작가의 마지막 손길이 희미하게나마 묻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볼 생각이었다. 나는 프란체스카스러운 심혜진의 모습이 반가웠고, 황우슬혜의 오프비트한 코미디가 좋았다. 시트콤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윤지민이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점점 복잡하게 발전하는 과정을 만족스러워하며 지켜보았다. 이 시트콤에 나오는 사람들은, 배우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모두 충분한 발전 가능성이 있었다. 적어도 나는 4,50회까지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지금 그 기대 대부분은 사라져버렸지만.

아마 내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목격한 이 이상 현상에는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심혜진의 하차를 볼 때처럼 그 모든 이유들을 관대하게 보아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모든 이상 현상들을 이해해줄 수 있다고 해도 그 결과가 작품 자체를 조금씩 갉아먹었다는 사실 자체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결국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변명이 아니라 결과물이니 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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