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한 나라’의 에프엑스에 열광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내 말 들어봐요, 언니? I'm in the Trance. 지금 이 감정은 뭐죠? 난 처음인데” 걸그룹 에프엑스의 노래
멤버들 역시 소녀들이 어린 시절에 즐겨보던 그림책이나 또래들과 함께하던 인형놀이나 연극놀이의 등장인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소녀 설리, 마법사 모자가 어울릴 것 같은 루나, 차갑고 도도한 여왕이나 공주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크리스탈, 요정처럼 웃는 빅토리아, 순정만화 속 근위대장 같은 엠버.
에프엑스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어찌 보면 유아스러운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뭔가 싶지만 친구들끼리 깔깔거리는 말장난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치즈 퐁듀늪 너머 츄잉츄잉 엮는 껌 같은.
대부분의 사랑 노래로 채워진 <피노키오>가 타이틀곡이었던 에프엑스의 정규1집 역시 마찬가지다. 이 앨범에 실린 사랑노래들이 남녀의 생생한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소녀들이 꿈꾸는 연애에 대한 것들, 혹은 소녀들이 만들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남자친구에 대한 노래 같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어딘지 현대판 버전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친오빠가 만나면 원투펀치 날려주고 싶은 갱스터보이를 한 소녀가 사랑한다. 하지만 소녀는 제멋대로인 갱스터보이를 피노키오처럼 조각조각 따따따 부셔보고 맘에 들게 따따따 다시 조립하는 작전에 들어간다. 누가 봐도 완벽한 남자로 다시 만들기 위해. 그 방법으로는 소녀의 눈물과 한숨과 탄성과 윙크를 담은 레몬보다는 부드럽고 오렌지보다는 상큼한 스페셜 메디슨 처방전이 있다.

이처럼 소녀들의 세계를 담고 있는 음악이지만 에프엑스를 좋아하는 남자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걸그룹을 좋아하는 이유와 살짝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골수 남성 음악팬들은 음악을 수학문제나 퍼즐 풀듯이 듣는 걸 좋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멜로디, 비트, 코드, 보컬, 곡의 구성 등등 여러 가지 면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그런 면에서 이들의 음악은 함수문제처럼 머릿속으로 풀어보는 재미가 있다. 가사는 남자들의 취향에 안 맞아도 음악 자체는 특히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열광할 만한 부분이 많다.
그림책에 등장할 법한 소녀적인 감수성과 흥얼대기 좋은 후크송은 아니지만 독특한 퍼즐 같은 맛이 있는 신선한 음악스타일. 에프엑스는 그 두 가지 장점으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시크한 분위기도 인기에 한 몫 하겠지만.
최근 발표된 에프엑스의 미니앨범 <일렉트릭 쇼크> 역시 그렇다. 이 앨범은 어느 정도의 대중적인 음악들을 선보였던 1집보다 훨씬 더 일렉트로닉한 색깔이 짙다. 앨리스가 도착한 이상한 나라의 클럽에서 들려올 법한 음악들. 타이틀곡은 무난하게 신나지만 이어지는 곡들인 <제트별>이나 <지그재그>,
물론 에프엑스는 소녀시대나 원더걸스처럼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릴 걸그룹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알리바바 열려라 닫혀라. 내가 뭐 출입구니? 밀었다 당겼다. 문은 열렸어. 어떻게 할 거야. 두껍아 문젤 줄게 답을 다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앙숙.”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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