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가시>, 한국 영화 진화의 증거물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이번 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대적하는 유일한 한국 영화 <연가시>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인터넷 최고의 화제를 가져왔던 <곱등이와 연가시>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연가시가 인간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소재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흥미거리의 소재 제시로 끝날 수 있었던 드라마를 흥미롭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장점이 있다. 거기에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김명민의 호연은 더욱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연가시>는 지난 90여년간 만들어져온 한국 영화들의 장르 분포도 속에서 매우 적은 부분에 위치하는 '재난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재난영화'는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첫째 적지 않은 제작비가 소요될 수밖에 없어 기획이 어렵다. 둘째 사회적 '재난'이라는 것 자체가 정치권, 특히 정부 부처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었기에 '민주화'가 정착된 이후에나 만들어질 수 있었다. 셋째 한국 영화 특유의 '한정된 소재' 안에서 재난 거리를 찾기 쉽지 않았다는 점들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일본의 특촬물을 모방한 <대괴수 용가리>나 <우주 괴인 왕마귀> 등의 영화들이 나왔지만 이것을 본격적인 '재난영화'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있다. 진정 본격적인 재난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로부터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로 이어지는 21세기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연가시>는 그런 한국 재난 영화의 짧은 전통을 이어받는 작품이다. 여러모로 봉준호 감독의 대한민국 사상 최고 흥행작 <괴물>과 비교할 부분이 많다. <괴물>의 플롯은 사회적인 문제로 시작돼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결국 한 가족의 이야기로 변화해간다. <연가시>는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한 가족의 이야기로 변화하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사회적인 문제라는 플롯을 지닌다.
확실한 것은 <연가시>는 '이 땅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괴물>이 주한 미군과 환경의 문제를 정확하게 건드렸듯, <연가시>는 거대 자본의 지배 구조를 직설적으로 펼친다. '인간 기생충'이라는 '흥미 거리에 지나지 않을 법한 소재'에 메시지를 담고, 또한 극으로 펼쳐낸 각본의 힘이 대단하다. 오랫동안 한국 특유의 코미디 장르 영화들,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바람의 전설> 등의 각본을 쓰거나 연출한 박정우는 이번 <연가시>를 통해서 한국 영화의 소재 다양화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새로운 소재를 향해 접근하는 한국 영화계의 현 상황은 현재 제작을 진행중인 작품들을 살펴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된다. 8월 개봉 예정인 차태현 주연의 사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우리가 기존 사극에서 만날 수 없었던 장르인 범죄물이다. 조선시대, 얼음 창고를 턴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오션즈 일레븐>의 조선시대 판을 표방하고 있다.
<시실리 2Km>과 <차우>를 연출한 신정원 감독의 신작 <점쟁이들> 역시 한국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소재를 지니고 있다. 바다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 전국의 내로라 하는 점쟁이들이 뭉친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악령이 등장하는 호러 영화들의 특성, 다양한 점쟁이들의 캐릭터 코미디적 성격, 거기에 감독 스스로 <구니스>나 <인디아나 존스>같은 어드벤쳐 무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인터뷰까지 전하며 흥미를 배가하고 있다.
'한국형 스릴러'는 해마다 여러 작품 만들어지고 있지만 8월 23일 개봉 예정인 <이웃사람>은 색다른 설정을 지니고 있다. 연쇄살인범과 그 이웃 사람들의 대결이라는 특이한 설정의 이 작품은 만화가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한국 영화 소재와 스토리텔링의 다양화에는 이렇게 웹툰 등 새로운 매체의 스토리텔러들이 이식됐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한국 영화의 양적인 규모의 팽창은 2006년 한국 영화 침체기를 겪으며 주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의 전체적인 예산 규모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변화하면서 한국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희망은 살아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연가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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