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김작가의 음악이 해준 말] 밴드에서 송라이팅을 담당하지 않았던 멤버가 솔로 앨범을 낼 경우, 그 앨범은 높은 확률로 실망감을 안겨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렇다. 하지만 야광토끼는 그 높은 확률을 완벽하게 비껴나간다. 아홉 곡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록곡은 2008년 혜성처럼 등장해서 인디 음악팬들 뿐 아니라 대중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검정치마의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당혹감을 안겨준다. '갑툭튀'만이 줄 수 있는,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달까. 그렇다. 야광토끼는 검정치마의 키보드 세션이자 밴드의 리더 조휴일의 오랜 친구인 임유진의 솔로 프로젝트다.

어릴 때 부터 J-팝을 좋아했던 임유진은 열여섯때 재즈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입문했다. 그러나 "마음은 로큰롤"이었기에 재즈에 애정을 느끼지 못한 채, 버클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조휴일을 만나 밴드를 시작했고, 연주자에서 송라이터로 꿈을 바꾸게 된다.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며 연습만 하고 있는 그녀에게 "너는 체육을 하고 싶은거냐"던 조휴일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 후 음악을 단련하기 보다는 음악으로 노는데 집중했다. 1년 반의 버클리 생활이었다. 한국, 일본, 영국을 돌아다니며 틈틈히 곡을 썼고 검정치마의 키보드로 활동하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10년 봄, 검정치마가 1집 활동을 접고 조휴일이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임유진은 본격적인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멜로디, 좋은 멜로디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훅이 확실하고 표현하고 싶은 걸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른바 '여신'들이 하나의 경향처럼 등장하며 여성싱어송라이터와 어쿠스틱 음악이 동의어처럼 여겨질 무렵이었다. "달달한 어쿠스틱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취향에 맞지도 않고, 너무 많기도 하고." 피닉스 같은 뮤지션들을 좋아했기에 신스팝을 하고 싶었다. 음악적 아이디어를 다듬어줄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조휴일의 소개로 게임 '콜 오브 듀티'의 음악을 담당했던 클리프 린을 알게 됐다. 버클리 동문이기도 했다. 임유진은 서울에서, 클리프 린은 뉴욕에서 이메일로 음악을 교환하며 작업이 시작했다. 클리프 린은 임유진이 보낸 소스를 바탕으로 기타, 베이스를 연주하고 온갖 비트와 음향을 채워넣었다. 보컬을 제외한 다른 파트가 뉴욕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내가 만든 음악이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바뀌는 걸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일년의 작업 끝에 데뷔 앨범이 완성됐다. 프로듀서도, 임유진도 모두 만족하는 결과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야광토끼의 데뷔 앨범은 당초 그녀의 의도처럼 최근 국내 여성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과 궤를 달리한다.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흐름과도, 시부야케이를 근간으로 감상용 일렉트로닉을 지향하는 흐름과도, 또한 여성의 목소리를 내세운 기타팝적 흐름과도 다르다. 이 앨범의 사운드가 기대고 있는 건 오히려 라 룩스, 골드프랩 등 최근 등장하고 있는 여성 일렉트로팝에 가깝다. 댄스 클럽에서 틀어도 무리없을 비트와 차 한잔의 배경음악으로도 손색없을 유연한 사운드가 공존한다. 이 공존은 앨범 전반에 들어차있는 잔향에 의해 하나로 묶여, 기존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아련한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이 아련한 그루브와 안개같은 공간감을 명료하고 확실한 훅을 갖춘 멜로디가 해치고 나아간다. 꾸미지 않되 지루하지 않은 음색과 가사 하나 하나를 또렷이 노래하는 보컬이 그 멜로디를 이끈다. 강수지와 하수빈의 시대를 그리워할 이들을 매혹시킬 청량감이 앨범에 가득하다. 윤상이나 예민 같은 그 시대의 프로듀서들이 다시 그녀들과 손을 잡는다면 이런 음악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캐치한 팝과 세련된 일렉트로니카가 조화를 이룬다. 옛것과 새것이 본래 하나였던 듯 어우러진다. 여성 뮤지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서와 자신의 언어로 창작에 접근하는 프로듀서의 감각이 한 물결속에 흐른다. 지금의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의 정서를 야광토끼는 가장 동시대적인 방법으로 풀어놓는다. 향후의 활동과 상관없이, 음반만으로도 2011년의 발견으로 기록될 양질의 팝 앨범이 지금 우리앞에 있다. 그녀는 "검정치마 같은 앨범을 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검정치마만큼, 하지만 검정치마와는 다른 매력이 앨범안에 가득하다. 성별이, 이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선입견은 그 매력앞에 곧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팝이다.


칼럼니스트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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