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싱글맘이라는 굴레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잘 나가는 독신녀 황지안(김선아)이 자신 보다 열 살이나 어린 보잘 것 없는 남자 박태강(이장우)과 우연히 하룻밤 잠을 자면서 로맨스가 시작되었을 때, <아이두아이두>는 그냥 그렇고 그런 트렌디드라마였다. 지안과 맞선을 본 완벽한 조건의 의사 조은성(박건형)이 자신의 독신주의를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리고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해 온 것도 예상 가능한 구도였다. 여기에 구두회사의 이사인 그녀가 부사장인 회장의 서녀 염나리(임수향)와 사장 자리를 두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자 이야기는 더욱 빤해졌다.
이런 진부한 구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건 지완이 임신을 하면서부터이다. 사실 많은 로맨틱코미디에서 여자주인공의 임신이 남자주인공과 관계를 형성해주고 갈등을 키워주고 결합에 이르기 위한 계기로 기능해왔고, 이 드라마도 그런 기본 틀을 크게 벗어날 거 같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선 임신이 주인공 남녀가 결국 맺어질 수밖에 없는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손쉬운 수순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지완의 임신은 상황을 여러 모로 복잡하게 꼬아놓는다. 선보고 서로 호감을 느낀 은성과의 관계는 비틀리고, 아이아빠인 태강과의 관계는 불편한 긴장이 끼어들면서 쉽게 로맨틱한 관계로 전환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커리어 인생이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지안을 사장으로 추대하려던 회장 사모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고 변심하여 그녀를 쫓아낼 궁리까지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것을 버리거나 놓쳐야 했던 성공한 구두디자이너가 자신이 쌓아온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자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이 여자가 한순간의 실수로 벌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솔직당당하다.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을 때도, 은성에게 사실을 밝힐 때도, 그녀는 그다지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끌지 않는다. “아이 아빠 없이 혼자 키울겁니다.” 그녀는 싱글맘을 선언하면서 사장자리도 포기하겠다 말하고, 은성의 청혼마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조기 폐경을 앞둔 지안이 아이를 선택하는 것에 낙태를 죄악시하는 국가시책과 그보다 더욱 강력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오랜 드라마 관습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단지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싱글맘을 선택했을 때, 여기에는 모성신화를 넘어서는 이 시대의 성공신화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를 포기하고 일을 선택하거나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하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아이와 일 모두를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일하는 여성을 겨냥한 모성신화가 아니라 그 반대, 성공하는 커리어우먼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서의 모성의 부가이다. 그녀에게 임신은 모성에 대한 환상이 아닌, 그녀가 극복해 나가야할, 그녀에게 닥친 일종의 위기이자 시험, 또 하나의 도전과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지안이 당연히 젊은 애 아빠 태강과 맺어지리라는 예견된 결말은 쉽사리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은성이라는 남자의 태도 역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싱글맘을 선언한 그녀가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두 남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뻔한 삼각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때 지안의 고민이 현실적이고 치열할수록 흥미롭게도 판타지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지안 옆에서 헌신적 애정을 보이는 두 남자는 성공한 여자의 판타지를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다. 어리고 만만한 태강은 지안의 수족이 되어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도, 애교와 투정으로 그녀를 즐겁게 해준다. 성숙하고 믿음직한 은성은 옆에서 보살펴주고 이해해주고 감싸주며 상담까지 도맡는다. 여기서 지안이 자존심도 드높게 싱글맘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서로 아이 아빠가 되겠다는 두 남자의 극진한 사랑이라는 뒷배 때문이다. 그녀는 버려진 여자가 아니라 누구도 쉽게 차지할 수 없는, 공략하기 쉽지 않은 여자인 것이다.
이는 지안과 태강의 관계에서 좀 더 확실히 드러난다. 남자신데렐라이야기의 변주를 그리는 이들의 관계는 이전 드라마들과는 다른 관계유형을 보여준다. <프라하의 연인>이나 <환상의 커플>에서 여자주인공들은 그녀들이 가진 부와 관력에 대비되는 어리숙함,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오히려 남자주인공들이 훨씬 낮은 지위에 가진 것 없고 별볼일 없어도 자존심만은 하늘을 찌를 듯 도도했었다.
그러나 황지안에게는 그런 식의 사랑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마녀, 메두사로 불리며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 그녀는 세련되고 고급스럽고 스타일 좋지만, 딱딱하고 퉁명스럽고 메마르고 여유가 없다.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러운 쪽은 태강이다. 그는 그녀에게서 성공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는 여자의 위태로움을 본다.
(임신으로 인해 더욱 더) 그녀에게 안쓰러움과 보호본능을 느끼는 두 남자가 자기 밖에 모르는 이 잘난 여자를 옆에서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지안은 두 남자의 헌신적 사랑에 힘입어 회사에서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을 향해 계속 달려갈 것이다. 싱글맘이라는 굴레조차 결코 그녀의 능력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성공한 여성에 대한 판타지는 그렇게 새로운 판본을 얻었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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