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 당신의 아이비에서 우리의 박은혜로 바뀐 사연

[공연과 건강]

- 1990년생 음주활동 보다는 문화생활에 충실해 보세요. 특히 서남쪽에 행운이 있습니다. 관객을 강하게 흡수하는 카리스마 뮤지컬이 항시 대기중입니다.
- 1980년생 망사조끼 사이로 언뜻 비치는 식스팩 복근을 자랑하는 이상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연인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겠습니다.
- 1970년생 검은 망사 스타킹에 시스루 의상, 가터벨트를 한 8등신 팜므파탈 여배우의 등장은 직장생활에 지친 당신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 부인 혹은 애인과 함께 왔다면 표정관리 잘하시길!
- 1960년생 인순이와 박칼린이 출연한다는 소식만 듣고 뮤지컬 보러왔다 젊은 가수로만 알고 있던 ‘아이비’의 매력에 풍덩빠집니다. 골반을 좌우로 아찔하게 돌리는 밥 포시의 관능적인 안무가 젊음을 되찾아줄겁니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2010년 한국 초연 이후 8번째 관객과 만나고 있는 핫 뮤지컬 <시카고>의 중심엔 섹시 가수 아이비가 있다. 사실 공연담당 기자로서 연예인이 뮤지컬 무대에 서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연예인이 무대에 선다고 하면 이슈거리가 되긴 하겠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뮤지컬 전문 배우들의 탄탄한 가창 혹은 무대 장악력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의 실력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시카고> 캐스팅이 확정되자 가수 아이비보다는 뮤지컬 배우 윤공주가 출연하는 날로 <시카고>를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기자 초청 하이라이트 리허설이 열리자 반응이 엇갈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기자들도 몇 보였다. ‘윤공주가 단연 뛰어날 거라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아이비가 더 끌리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미 텔레비전에서 맛 본 매혹적인 외모 때문은 아닐 테고 그 이유가 뭐였을까?

적역 캐스팅의 맛이다. 아이비가 맡은 캐릭터는 나이트클럽의 가수 록시다. 정비공 남편이 있음에도 정부와 하룻 밤 즐기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자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로 들어오게 된 인물이다. 쇼 비즈니스의 천재인 변호사 빌리의 도움으로 언론을 현혹시켜 스타가 된다. 멍청한 록시, 일회용 록시의 색깔외에도 스타로서의 관능미까지 함께 갖춰야 관객이 집중할 수 있는 캐릭터다. 이 모든 걸 맛깔스럽게 해내는 배우가 박은혜다. 반면 윤공주는 지나치게 완벽하게 싶을 만큼 캐릭터를 소화해내 인간적인 매력이 줄어든 점이 흠이다.



뮤지컬 <시카고>를 보기 전까지는 가수 아이비로 기억되지만, 관람 이후에는 배우 박은혜로 부르고 싶어진다. 아이비는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에서 비앙카 역으로 출연한 이후 두 번째 뮤지컬 무대이다. 첫 무대가 나쁘지 않은 조연이었다면 이번엔 강력한 존재감을 지닌 주연이다.

아이비의 인생 역정을 뮤지컬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관객을 끌어모은다. 스캔들과 황색언론에 맞서 새로운 인생을 찾아가는 록시는 아이비이자 박은혜였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편집을 해 만든 동영상 파문과 스캔들로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던 그녀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인간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죽어도 싸지’라는 후렴구, 록시의 살인동기에 공감하며 극중 기자가 부르는 ‘이해할만해’도 묘하게 쫙쫙 들어맞는다.

빌리 무릎에 앉아 자신의 내면을 숨긴 채 꼭두각시 가수를 연기하는 복화술 장면은 단연 으뜸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쇼비즈니스’세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교태스런 목소리와 가면으로 위장해야 했던 아이비가 생생하게 살아나왔기 때문이다.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늙어가는 모습을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뮤지컬 배우로서 두 번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법정과 감옥을 배경으로 섹스와 살인 및 황색언론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된 뮤지컬 <시카고>의 스토리는 농염한 재즈 선율을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한편, 노래와 대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벨마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최정원을, 무대 위 거인 가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다면 인순이 무대를 추천한다. 10월 7일까지,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칼럼니스트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신시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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