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자보다 먼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
- ‘가수다’, PD교체와 결방이 끝내 아쉬운 이유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회의(會議)가 많은 회사는 회의(懷疑)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의 목표를 공유하고 그를 실행하고 달성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토론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현장감이 수반되지 않은 잦은 회의는 탁상공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구성원들간에도 ‘시간을 때우기 위한 회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논의’로 각인되면서 오히려 애초에 설정한 목표달성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오너가 없는 회사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대한민국 예능 역사상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남긴 프로그램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갖 연예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 들였던 MBC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가 지난 27일 장장 165분간의 특집방송을 끝으로 진한 감동과 여운, 그리고 기대감을 남기면서 4주간의 짧은 ‘1기 활동’을 마무리했다.

‘나는 가수다’는 지난 한달 간 ‘전문가수의 서바이벌 방식 논란→첫 방송 후 뜨거운 반응→ 원칙을 어긴 재도전 허용에 따른 거센 비난→시즌1 마지막 방송 후 다시 이어진 찬사’로 희비가 급격하게 교차되는 양상이 전개됐다. 현재 분위기는 “폐지하면 MBC를 폭파하겠다”, “일주일 정도 더 기다리고 비난할 걸 후회된다”, “한 달을 어떻게 기다리나”, “쌀집아저씨를 돌려달라” 등 호의적인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당초 논란이 됐던 프로가수의 ‘탈락’에 대한 우려는 ‘양보’라는 의미로 완벽하게 정리되고 흡수되면서 제작 초기의 진정성이 전달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165분간의 감동을 이어갈 수 없는 부분이 못내 안타깝다. 너무 아쉽기 때문에 한번은 짚어보고 정리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 불과 일주일 동안 MBC와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모두 세 차례의 중요한 실수를 했다. 방송 초기의 시행착오나 학습비용으로 치고 넘어가기에는 큰 무리수를, 단기간에 너무 저질러 버렸다.

발단은 역시 꼴찌를 한 김건모의 재도전 허용이다. 원칙을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진행된 재도전 방식변경 및 수락이 큰 문제였고, 더구나 이미지로 먹고 사는 출연진을 배려하지 않고 여과없이 방송한 부분에 있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후 이뤄진 마녀사냥식 비판과 비난에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제작진 책임이 크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지난 번에 자세히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잘 수습될 수 있던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MBC가 연이은 자책골을 기록하며 사태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첫 자책골은 지난 23일 기록됐다. ‘김건모 재도전 논란’이 증폭되면서 MBC는 ‘나는 가수다’ 연출자인 김영희PD를 전격 경질했다. MBC는 "한 번의 예외는 두 번, 세 번의 예외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경질 배경을 설명했지만 ‘희생양’을 찾았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김영희 PD는 재도전 논란 이후 ‘책임질 부분은 책임 지겠다’고 했지만 마지막회 녹화가 진행된 지난 21일에도 출연진 일부와 저녁 늦게까지 회식을 하며 대책을 논의하는 등 열의를 보였는데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나는 가수다’는 김영희 PD가 기획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입증하듯 극심한 부담을 느낀 김건모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출연가수 모두가 술렁였다. 여론의 역풍을 맞은 건 당연하다.

MBC의 마무리 자책골은 가만히 있어도 이틀 후면 전세를 충분히 역전 시킬 수 있는 시점인 지난 25일 나왔다. 이날 MBC는 ‘놀러와’의 신정수 PD를 구원투수로 내세우면서 “프로그램을 새로 정비하고 새 팀이 자리잡는 기간을 가질 예정”이라며 결방을 예고했다. 결방 기간에는 ‘한류 콘서트’ 등으로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했다. PD 경질과 마찬가지로 너무 손쉽게 내린 처방이다. 프로그램 시간을 대폭 줄이더라도 새로 정비하는 과정, 출연가수들의 방송 이후 나타난 변화 등 스토리를 리얼로 담아 ‘감동’은 물론 ‘즐거움’을 전한다는 기존 취지를 지속적으로 살려야 했다. 오히려 ‘노래’와 ‘감동’에만 경도된 방향성에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MBC는 당장의 날 선 비판이 싫었던 모양이다.



모두가 결과론이라고? 맞다. 그래서 더 아쉽다. 정보가 100% 열려있는 사람이었다면 예측가능한 범주에 있는 결과였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 정보를 미리알 수 있는 위치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의사결정권까지 가진 사람들이 있다. MBC 임원들이다. MBC는 논란 초기에 그 바쁜 임원들이 사흘간 세 차례나 ‘나는 가수다’와 관련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했다. 그 결과 나온 처방이 김영희 PD 경질이었다. 이후 김건모의 자진사퇴에 이어 폐지논란이 거세지자 MBC는 또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아시다시피 결방이다. 그리고 또 회의를 했다. 오죽했으면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MBC 예능국장은 모 매체와의 통화에서 “'나가수' 사태가 불거지면서 자주 회의를 하고 있다”며 “폐지가 아니라 어떻게 잘 봉합하는지가 관건인데, 자꾸 이상한 보도가 나와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건모 재도전 선언 이후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넘어 MBC 예능 프로그램 전체와 MBC라는 회사에까지 무차별적인 비판과 비난들이 홍수처럼 넘쳐난 걸 생각하면 일견 수많은 대책회의가 열린 게 당연하다. 이해가 간다. 문제는 회의가 아니라 해결책이다. MBC 표현을 빌리자면 자꾸 나오는 ‘이상한 보도’와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쓰며 책상에 앉아 대응방법을 강구한 게 아닐까. 사실 이 같은 보도와 비난글들은 ‘165분 방송’ 이후 쑥 들어갔다. 오히려 뚜껑 열기도 전에 돌을 던졌다고 미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뚜껑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충분히 비난할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김영희 PD는 자신에 대해 비판이 도를 넘어 인신공격까지 쏟아지던 지난 21일 정상적으로 녹화를 감행했다. 물론 이 때는 경질이 결정되기 전이다.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녹화를 진행하고 출연진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건 ‘제발 한 주만 더 지켜보고 평가해 달라’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방송을 지켜본 결과 그 자신감은 21일 녹화를 진행한 이후 더 충만해지지 않았을까. 이틀이 되지 않아 돌아온 건 PD교체 발표였지만 말이다.

만약 사흘간 세 차례나 회의를 가졌다는 MBC 임원들이 21일 ‘나는 가수다’ 녹화현장을 지켜봤으면 어땠을까. 녹화장소에서 현장을 지켜보면서 대책회의를 가졌으면 그들의 자신감은 어떻게 변했으며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바쁘더라도 말이다. 기사나 댓글을 보며 신경쓸 시간만 투자하면 됐다. 회의도 세 번이나 할 필요없이 21일 오후 한 차례면 충분했다. ‘나는 가수다’ 녹화는 MBC 일산 드림센터에서 진행된다. ‘현장중심 경영’은 경영학이론서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27일 브라운관이나 모니터를 통해 전달받은 감동과 느낌을, 그들은 우리보다 6일전에 현장에서 직접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다음주에도 '나는 가수다'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김영희 PD를 경질했을 것이며 결방을 결정했을 거라고 답한다면 할 말 없다. 임원쯤 되면 ‘감’이 떨어지나 보다 생각할 수 밖에.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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