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흥행 참패’ 박진영, 배우로 재기하기 위한 방법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박진영은 1994년에 데뷔했다. 미쓰에이의 수지가 태어난 해다. 한국 연예계의 특성상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이들이 많지만, 박진영은 데뷔 19년차에 처음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개봉 후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다. 첫 주 7만여명의 관객, 최종 스코어는 15만~20만명 정도가 예측되는 숫자다. 흥행 실패라고 볼 수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인기가 급상승한 가수들을 캐스팅해 급조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박남정이 '널 그리며' 로 큰 인기를 얻은 1989년, 그가 주연한 <새앙쥐 상륙작전>이 만들어졌다. 같은 해, 역시 '담다디'로 스타덤에 오른 이상은을 주연으로 한 영화는 아예 그 히트곡의 제목과 같은 <담다디>였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지금 많이 달라진 영화계에서는 그런 기획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문제는 박진영 주연의 <5백만불의 사나이>는 그런 급조된 기획처럼 보이는 혐의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랫동안, 무려 19년이나 가요계에서 활동해온 '노장'이 첫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선입견 속에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7급 공무원>이나 <추노> 등 굵직한 기획을 성공시킨 기획자인 동시에 각본가 천성일이라는 단단한 브랜드와 오랫동안 데뷔를 준비해 온 김익로 감독의 역량은 관객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박진영이라는 브랜드'가 관객들에게 오해를 샀기 때문이다.
박진영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드림하이>에서였다. JYP가 처음으로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이 작품에서 사실상 박진영은 '드라마 외적인 홍보용의 사장님 카메오'인 것처럼 등장했지만 의외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인정받았다. 박진영이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갖춘 이유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관객들이 생각하는 박진영 그 자체'를 선보인 캐릭터 때문이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어쨌든 첫 드라마 출연으로 호평을 받은 박진영은 자신감이 생겼고, '급조된 기획'이 아니라 확실한 브랜드를 지닌 기획자를 만나 결국 영화의 주연에 도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5백만불의 사나이>에서 박진영이 맡은 역할 '최영인'은 천성일 작가가 처음부터 박진영을 염두에 두고 창조한 캐릭터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박진영 그 자체'가 아니라 '박진영의 특성을 지닌 또 다른 인물'이라는 점이 문제를 발생시켰다. 만약 박진영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했다면 관객들이 19년 동안 바라보며 익숙해져 있는 '박진영'을 아예 지워버릴 수 있는 캐릭터로 등장시켰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캐릭터 '최영인'은 끊임없이 이 캐릭터가 '가수 박진영'임을 상기시킨다. "나 사실 가수였어"같은 대사는 코미디의 포인트이긴 하지만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밀도가 낮지 않은 코미디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가수 박진영'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속의 꽁트 같은 느낌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은 온전한 박진영 그 자체도 아니었다. 꽤나 전사와 특성이 확실하게 잘 짜여져 있는 캐릭터였다.
어차피 박진영이 주연한 영화에서 '가수 박진영'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차라리 박진영이 주연한 영화에서 박진영은 '박진영 그 자체'여야 한다. <5백만불의 사나이>를 통해서 박진영은 연기력의 측면에서 두 가지 화두를 던져 줬다. 첫째로 영화에 거듭 출연하다보면 지금의 다소 어색한 연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 둘째로는 '자기 자신을 연기할 때 가장 빛나는 연기자'라는 점이다.
첫 주연작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박진영의 배우로서의 브랜드는 사뭇 낮아졌다. 박진영이 '연기자'로 재기하기 위해서는 다음 행보가 매우 중요한데, 완전한 변신을 통해 관객들이 '가수 박진영'임을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들겠다는 허황된 야망보다는 '가수 박진영이 지니고 있는 여러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박진영은, 적어도 첫 영화에서는, 박진영이여야 했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