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연극 <러버>와 <불 좀 꺼주세요>에 대한 궁금증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불 끄고 뭐하는데? 야. 이거 되게 야할 것 같다.-연극 <불 좀 꺼주세요> 제목을 듣고 난 뒤 보인 한 남성 관객의 반응”

“저 남자 손이 어디에 가 있는거야? 야한 연극이 맞나봐.-에로 영화를 방불케 하는 연극 <러버> 포스터를 본 여성 관객의 반응”

‘노출연극’, ‘성인연극’, ‘19금(禁) 연극’이란 딱지가 붙으면 연극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덩달아 눈이 동그래지며 관심을 보인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성인연극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됐던 <교수와 여제자>, <가자 장미여관으로>가 그런 연극 중 하나이다.

궁금했다. 주변에서도 ‘그’ 연극 본 적 있냐고 자꾸 물어봤다. ‘공연기자로서 한번은 봐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묘한 호기심도 불러왔다. 드디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프레스콜 현장에 출두했다. 현장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낼 카메라 및 영상 장비를 셋업 해 논 에너지 넘치는 남자기자들로 꽉 차 있었다. 하이라이트로 봤음에도 ‘연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품이었다. 야한 건 둘째치고 연기 자체가 안 된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다. 관계자분은 “실제 연극 무대에서는 지금과 달리 옷을 다 벗고 나옵니다” 이 문구만 강조했다. 본 공연은 볼 필요도 없어 보였다.

2012년 뜨거운 여름 한 복판, 섹슈얼 연극 <러버>와 19금(禁) 연극 <불 좀 꺼주세요>가 개막했다. 다시 한 번 궁금해졌다. ‘생각보다 야하지 않다’, ‘작품성 있는 성인연극이란 이런 것이다’로 반응이 엇갈렸다.

관객들은 19금(禁) 연극에서 뭘 기대하는가. ‘작품성’이란 말로 포장하지 말고 보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 관객들이 성인연극을 보러가는 이유 중 하나는 TV 화면 혹은 영화의 스크린을 한 차례 거친 뒤 눈 앞에 투사되는 게 아닌 자신의 시각 중추에 따라 마음대로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일화는 19금(禁)무용 공연에서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운 채 공연을 관람하던 50대 아저씨 관객이 ‘(뒷 사람이) 시야를 가리니 조금만 몸을 숙여달라’고 요구하자 불같이 화를 냈던 일이다. 마음대로 훔쳐보고 싶은 자유를 제지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선정적인 장면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클릭 한번이면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성인연극을 찾는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뭘 기대했기에 두 연극에 대해 ‘생각보다 야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는가.



우선, 두 작품 모두 배우들의 노출이 많지 않다. 예술적 에로티시즘의 절정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연극열전4> 세 번째 작품인 연극 <러버>, ‘영화 ‘서편제’, 가요 ‘핑계’와 더불어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에 소장됐을 뿐 아니라 30 ▪40대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연극으로 손꼽힌 <불 좀 꺼주세요>의 노출 수위는 ‘에로 연극’을 기대하고 온 관객의 입맛에는 맞지 않다.

1974년, <티타임의 정사>로 국내 초연되기도 했던 <러버>는 전라노출이 나오긴 한다. 다만 순식간에 회전무대가 돌아가버린다는 점이 감질맛 나게 한다. 그 결과 무대 위에 서 있는 전라배우를 볼라치면 이미 뒷모습만 무대를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본능과 욕망의 허망함 및 공허함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한다는 점이 문제다.

2004년도 연극열전 주최로 ‘3040 오직 남성만을 위한 낭만 시연회’를 열었던 연극으로 기억되는 <불 좀 꺼주세요>는 여자분신 역 배우의 상반신 노출 장면이 아주 잠깐 있다. 그마저도 배우가 두 손으로 요령껏 가린다. 왜 ‘19금(禁) 연극’이라고 홍보한 거야? 라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한편, ‘2004년도 <불 좀 꺼주세요> 조연출로 참여했던 오경택이 <러버>의 연출로 참여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오히려 두 작품 모두 ‘연극 놀이’를 전면에 내세워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폭로하며 불륜의 쾌감을 즐기게 한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또 다른 의미로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일깨우는 연극으로 볼 수 있다.



<러버>는 ‘부부간의 티타임의 정사’라는 짜릿한 놀이를 끌어들여 결혼생활의 권태와 허상,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통하려는 몸부림을 그린다. 쇼팽의 ‘즉흥환상곡’과 봉고 리듬으로 고조되는 아내와 남편의 내면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배우 이승비, 송영창, 김호진 출연. 8월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불 좀 꺼주세요>란 제목은 섹스코드의 의미가 아닌 ‘불을 끄고 솔직한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때 사랑을 나눴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중년의 국회의원 사내와 전직교사 여인의 재회로 시작한다. 무대 위에 본신(本身)과 분신(分身)을 등장시켜 현실 인물의 본능에 바탕한 속마음을 여과 없이 토해내며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일인 다역의 남녀 배우가 등장해 두 주인공들의 과거를 불러낼 뿐 아니라 극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원하면서도 제도적인 틀에 갇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는 장면 하나 하나가 웃음을 유발시킨다. 배우 남기애, 박성준 이효림, 신승용, 강윤경, 장정선, 이현주, 한재영, 박아름 외 88올림픽 굴렁쇠소년으로 알려진 윤태웅이 함께 무대에 선다. 9월 9일까지 대학로 극장.


칼럼니스트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극열전, 극단 완자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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