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올림픽이라 더 주목된 김병만의 솔선수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환호와 아쉬움으로 밤잠을 설치게 하는 올림픽이 한창인 이때, <정글의 법칙>은 쉼표를 찍었다. 시베리아 편은 아직까지 지난 바누아투 때만큼 아기자기하지도, 베어 그릴스나 레스 스트라우드의 방송을 볼 때면 느껴지는 숨겨뒀던 야성이 깨어나는 것 같은 자극도 크지 않다. 그 대신 광활한 시베리아에서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열대야처럼 과열된 오늘날 우리에게 잠시 쉬어갈 틈을 마련해주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 마모되거나 퇴화된 야성을 자극하는 본 재미는 아직 꺼내지 않았지만, 이번 시베리아 편은 사람들이 왜 <정글의 법칙>에 빠져드는지 그 내밀한 이유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길을 잃는 것으로 시작해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녹록치 않은 상황, 생각대로 되지 않는 먹거리 구하기. 이 오지의 고단함 속에 도전과 결속을 모토로 삼는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또 다른 관계와 인간애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정식 프로그램명 또한 그렇듯 김병만이다. 그는 <고쇼>에 나와 중년 남성들 특히 가장들이 <정글의 법칙>을 좋아하는 이유가 정글은 일상의 무게나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또한 그런 점에서 위성 전화도 잘 통하지 않는 단절된 정글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현실의 모든 관계나 제약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새롭게 세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분명 매력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 그런데, 김병만은 혼자 살아 돌아오는 베어 그릴스가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서 다른 부족원들을 책임지는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병만에게는 리더의 철학이 있다. 가장이 지녀야 할 덕목 중 으뜸인 책임을 어깨에 지고 언제나 솔선수범한다. 이는 가장 먼저 길을 개척하고, 사냥을 나서고, 집을 짓는 노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최단신이지만 누구보다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품고, 처음 만난 게스트들도 최대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춘다. 특히 막내 광희의 부상과 이탈을 대하는 어른스런 태도에서 감정 과잉의 여타 예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정한 리더의 덕목이 돋보였다.
군필자들에겐 이해불가의 논리지만 막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대부분의 노동에서 열외를 했던 광희는 누구보다 정글 생활을 힘들어했다. 까불고 호들갑을 떨면서 프로그램 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과는 별개로, 지난 바누아투 편에서는 포기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던 전력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런 그가 발목을 접질렸다. 프로그램의 그림 상 그가 하차하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일종의 실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광희 스스로에게도 도중하차는 실망스런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병만은 그런 광희가 최대한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오히려 다독였다. 본업에 충실하려면 몸이 건강해야 한다며 멀리 내다보자고 했다. 눈물을 보이거나 감동적인 포옹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면 같이하면 된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었다. 물론, 그 전날 광희가 무조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목발을 만들었던 것도 바로 그였다. 광희를 서울로 돌려보내기로 결정이 났을 그날, 이 소식을 알 리가 없는 김병만은 광희를 위해 몇 시간 동안 좋은 나무를 찾고, 정성들여 깎아서 튼튼한 수제 목발을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말없이 “이거… 어제 만들었어요?”라고 묻는 광희의 말 속에서 이런 아쉬움과 미안함이 묻어난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콜드플레이의 ‘Fix You’는 이런 안타까운 감정을 더욱 배가시켰지만, 딱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거기까지만 했다.
닦달하지도 말만 앞세우지도 않고 자신을 낮추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리더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지만 사실은 우애가 깊다는 리얼 버라이어티식의 캐릭터 관계망보다 훨씬 고전적인 묵묵한 아저씨 리더십 혹은 가장 리더십 하에서의 관계망은 오히려 사람들이 편안하게 <정글의 법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리키와의 첫 만남에서도, 동갑내기 추성훈과의 공존도, 아직 광개토대왕의 캐릭터를 벗어내지 못한 동생 이태곤과도 김병만은 겸손을 잃지 않았다. 먼저 이들을 존중하면서 품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김병만에게 기대었다. 자연을 존중하면 자연도 우리를 존중한다는 <정글의 법칙>의 모토가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이는 지난주 방영된 손님이 찾아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3일간 환대해준다는 순록유목민 네네츠 족의 스토리와 맞물리면서 더 짙은 믿음으로 다가왔다.

육봉달 박휘순은 달리는 마을버스에서 뛰어내리고,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는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김병만은 샷건으로 시베리아 오리를 잡았다.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함부로 ‘도전’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담당 PD의 말처럼 이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지 않았다. 그리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내놓았다.
이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김병만의 리더십은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각기 개성이 뚜렷한 부족원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도록 한다. 또한, 애초에 현실에선 결여된 판타지이자, 최소한 현 시점에서 일정한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그의 리더십은 시청자들이 그들의 다음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게끔 하는 중요한 장치로써도 작동한다. 정글에 대한 판타지는 역설적으로 현실에 대한 결핍에 대한 열망인 것이다.
<정글의 법칙>이 재밌는 것은 정글의 생태 때문이 아니라, 정글 속에서 어떻게 커뮤니티를 이루고 해쳐나갈지가 궁금해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단신들의 희망 김병만의 리더십이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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