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이, 식상해지지 않고 해외서 계속 통하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싸이가 처음 등장한 데뷔 무대를 기억한다. 누군가의 데뷔 무대를 기억하는 것은 싸이가 유일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우선 정원관이 사라지고 신동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가요계에 그런 비주얼은 전무후무했다. 당시 무대 위에는 지금보다 훨씬 몰개성적인 선남선녀가 득세했고, 기껏 해봐야 교포 가수들의 바운스나 부분 염색 머리에서 날라리스러움을 느끼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정원관이나 신동 또한 몸매가 조금 남다를 뿐 멋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머리에 포마드를 잔뜩 바른 어떤 뚱보 가수의 등장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 뚱보는 자켓을 탈의하더니 출렁이는 살집이 훤히 다 드러나는 딱 붙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격렬한 춤사위를 날렸다. 표정과 가사는 힙합인데, 퍼포먼스와 노래는 교포 스타일도 아니고 뭐라 형언하기 힘들었다.
그 충격적인 데뷔 무대를 TV 생방송으로 지켜 본 한 친구는 그 충격에서 며칠 간 헤어나지 못하더니 심지어 10대 소녀들이 즐겨보는 가요 잡지를 직접 구입해 싸이의 소속사 주소를 찾아 팬레터를 보냈다. 사실 팬레터였다기보다 준엄한 항의성 문구를 담은 지금으로 말하면 점잖은 악플러의 댓글성 편지였다.
사람들은 놀랐다기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혹자들은 초고속 인터넷의 발달과 세기말을 갓 벗어난 당시 시대적 상황 속에 회자된 엽기문화의 요체로 이해하려 했고, 당시 음악을 좀 듣는다는 식자층 사이에서는 갱스터랩과 묵직한 뉴욕 힙합이 대유행이었는데, 갱스터라기엔 좀 웨이터스러운 그의 음악을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를 두고 각종 게시판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싸이는 노라조가 등장하기 5년 전, UV나 대준이나 형돈이, <개그콘서트> 출신 코미디언들이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10년도 더 전에 음악에 코미디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했던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다. 그리고 특유의 퍼포먼스와 공연 연출을 통해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에 이르러서는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강남스타일>은 싸이가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의 근본과도 같은 1집으로 돌아가고자 만든 곡이라고 한다. 싸이는 ‘챔피언’이란 곡 이후, 특히 몇 차례의 월드컵을 겪은 이후 신해철이나 김장훈 등 국내 콘서트 무대연출의 대가들과 함께하며 그 또한 공연계의 톱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싸이의 곡들은 공연연출을 너무나 의식한 게 눈에 보였다. 음악만 놓고 보면 드라마틱한 요소가 너무나 강조되었고, 가사 또한 곡의 웅장한 스케일에 걸맞게 감정이 과잉 전시되었다. 결과적으로 무대연출에는 그만일 수 있으나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음악의 완성을 너무 쇼 퍼포먼스로만 해결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YG로 소속을 옮기고 낸 <강남스타일>은 그 전에 비해 훨씬 세련돼졌다. 셔플댄스의 LMFAO나 후크송의 강자 Far East Movement가 떠오르는 일렉트로닉 힙합으로, 누가 들어도 신나고 귀에 꽂히는 중독성 강한 후크송을 들고 돌아왔다.
이런 음악적 성취를 바탕에다 두고 모순과 갈등이 가득한 가사와 비주얼,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마찬가지로 모순과 갈등을 한 몸에 안아낸 코믹한 뮤직비디오를 탄생시켰다. 같이 뭘 하자라든가, 이기자라든가 그런 것이 없다.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도 없다. 그저 패기 넘치던 ‘새’ 시절의 싸이만 있을 뿐이다. 그냥 웃고 즐기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따라하게 되는 묘한 매력을 제대로 담아낸 것이다.
이 매력은 유투브와 트위터를 타고나가 해외에서도 통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이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놀라운 성공은 그가 코믹한 캐릭터를 가진 싸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련된 음악 위에, 마치 조나 힐, 세스 로건, 대니 맥브라이드 같은 뚱보 루저 코믹 캐릭터의 퍼포먼스. 이 코미디가 저 대서양과 태평양 건너편 사람들까지 빵빵 터트리는 핵심인 것이다.
코미디로 성공했다고 해서 당연히 싸이에 대한 해외의 반응을 단지 ‘뚫훍송’ 정도로 폄하할 의도는 아니다. 이번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지만 앞으로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기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러니 성공한 이유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남스타일>은 당황스럽게도 기존의 성공 메커니즘이라 생각된 문법 대신 딱히 한국적이지 않은 음악과 영미권 특유의 코미디 정서를 자극하며 성공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할머니들의 관광버스 춤, 섹시한 언니들의 댄스와 요가, 너드가 퀸카를 향한 구애, 노홍철의 저질스런 춤사위 등은 미국 코미디 영화에서 애용되는 웃음 코드다. 그 위에 누가 봐도 찐따 스타일의 아시안 남자가 매우 진지하고 박력 터지는 표정으로 희한한 말춤을 추니, 이거 안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B급 정서의 승리가 아니라 코미디의 패러다임 변화가 SNS라는 플랫폼과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연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코미디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가 아닌 요소가 된 시대다. 여기에 우리의 어떤 콘텐츠가 영미권에서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과정에서 코미디 요소가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구성과 퍼포먼스는 우리가 외국의 짤방을 보고, SNL과 같은 외국 코미디 프로그램의 편집된 동영상을 보고 웃듯이 그들이 듣기에도 괜찮은 노래 위에 얹힌 한 편의 코미디인 것이다.
그래서 싸이가 해외에서 대박을 터트린 것과 K팝의 위엄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넌센스다. 싸이는 유투브와 SNS를 기반으로 한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기존의 성공 문법과는 다른 어떤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해준 사례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우리에게서는 B급이라고 통칭되었지만, 영미권에서 익숙한 코미디 정서가 있다. 이것이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물론, <강남스타일>을 보고 퍼포먼스는 좋은데 노래는 구리다고 하는 외국의 반응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래는 당연히 좋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음악은 필요요소지 충분요소가 아니다.
신선한 충격은 쉽게 식상해지게 마련이다. 유행이란 게 그렇듯 <강남스타일> 이후 싸이는 한때의 현상으로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싸이가 영미권 시장에서 계속 성공을 이어가려면 음악도 음악이지만 모순과 갈등의 한 몸에 받아내는 캐릭터의 진정성을 더욱 발산해야 할 것이다. 싸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음악이 바탕이 된다면, 우리에게서 터지는 것이 밖에서도 터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싸이의 코믹 정서가 영미권에선 반응한다는 것이다. 결국, 영미권 진출은 한국적이거나 해외시장 타겟팅 차원의 전략을 떠나 싸이 같은 개성, 즉 어떤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의 여부가 현재로선 답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YG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