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의 운명 같은 사랑이야기에 숨 끊어지는 관객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세다. 이러한 열풍이 뮤지컬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24일 베일을 벗은 류정한의 <영국스타일>이 그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싸이의 노래 가사 속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가 바로 시드니 칼튼 역 류정한이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서 칼튼은 세상을 비판적이고 염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술에 찌든 변호사이다. 물론 한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이야기다. 시드니 칼튼의 유약하고 순수한 내면을 알아봐주는 루시 마네뜨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눈을 뜬다. 찬 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고, 밤하늘의 수 많은 별들이 노래하는 천국이 펼쳐진 것이다.

극중 류정한은 장난스럽게 ‘영국 스똬(타)일’ 한 마디를 툭 던지지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류 칼튼은 프랑스 첩자의 누명을 쓰고 고소된 찰스 다네이가 잡혀온 법정에서 서 있기만 해도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고, ‘목숨을 걸고 당신을 믿는다는 여인의 말’에 결국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완전 미친’ 방법까지 찾아낸다.

칼튼이 그 어떤 안식처보다 평온한 곳을 찾았듯 관객들은 류정한의 마지막 품에서 구원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칼튼의 두 손을 꽉 잡은 죄수번호 ‘22번’ 평민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살그머니 들 것이다. 한 남자의 운명 같은 사랑이야기에 숨 끊어지는 관객들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상대역 루시에게 볼 뽀뽀 하는 씬이 더블캐스팅 된 윤형렬보다 달콤하지 않다. 하지만 (내 남자로 여기고 있는)관객에겐 오히려 이게 더 환호를 지르게 한다.

류정한의 <영국스타일>이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남의 여자가 된 루시와 그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좀처럼 몰입되기 힘든 캐릭터, 다소 지루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긴 스토리 구성을 쥐락펴락 했기 때문이다.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순 없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뮤지컬 넘버에 이토록 구구절절 담아낼 수 있는 배우는 그 말고는 찾기 힘들 정도다. ‘Reflection’, ‘I can't recall’의 감정선은 그대로 관객에게 최면제 역할을 하니 말이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원작으로 한 작품.
2008년 브로드웨이 공연 당시,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의 뒤를 이을 세계적인 뮤지컬이 될 것’ 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단순히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는 뮤지컬이 아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를 넘나들며 찰스 다네이(카이 • 전동석)와 루시 마네뜨(최현주 • 임혜영)의 사랑, 딸을 향한 알렉상드르 마네뜨 박사(김성기)의 사랑 그리고 루시 마네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시드니 칼튼(류정한• 윤형렬)의 사랑이 씨실과 날실이 엮여 가듯 짜임새 있게 전개된다. 에버몽드 일가에 의해 가족을 잃고 증오와 복수심을 간직한 채 사건의 고비마다 뜨개질로 원한을 기록하는 마담 드파르지(신영숙 • 이정화)가 뮤지컬의 깊이감을 더한다.



무대에 대한 평은 양측으로 갈릴 듯 하다.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는 단두대와 18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두 도시를 철골 건축물을 이용해 심플하면서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프랑스 파리는 빨간색으로, 영국 런던은 파란색 조명을 이용해 공간을 구분했다. 다만 높은 철골 무대를 배우들이 직접 밀면서 이동하는 까닭에 무대 전환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흠이다.

그럼에도 단두대의 날카로운 칼날 소리와 공포를 무대 뒤 검은막이 대각선 방향으로 순식간에 내려오면서 가려지는 장면으로 그려낸 점, 칼튼이 1막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까만 배경 위에 점점이 밝힌 빛나는 별 들을 2막 마지막 희생 씬에서도 불러내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다른 무엇도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었음’에 공감하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더블캐스팅 된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서도 감상이 달라진다. 로맨틱한 칼튼을 원한다면 윤형렬을, 나쁜 남자 칼튼에 더 끌린다면 류정한 공연을 보는 게 좋겠다. 프랑스 에버몽드 가족의 귀족 출신으로 귀족들의 오만함과 잔혹함에 신분과 이름 모두를 버리는 남자 ‘찰스 다네이’도 배우별로 색채가 다르다. 대사조차 노래로 표현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형식을 보여주는 초반엔 전동석의 소화력이 더 좋다. 카이는 훈남 외모 뒤에 다네이의 사상에 완전 몰입해 관객들의 설득력을 이끌어낸다.

두 루시가 모두 사랑스럽지만 최현주가 임혜영보다 내면 속 모성 연기를 끄집어 내는 데 탁월하다. <두 도시 이야기>가 ‘두 남자 이야기’가 아닌 ‘두 남자 플러스 한 여자 이야기’가 되게 만든 공로자 이정화는 온 몸 특히 ‘복부’에 복수와 한을 담아내 웅장한 기운을 전달한다. 아쉽게도 신영숙 드파르지 역은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런던 향우회’란 유머를 들려 준 존바사드 역 배우 정상훈의 유머가 간간히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루할땐 술 한잔 빨아주지 그랬어’라며 객석을 웃음 돋게 만든 리틀 루시역 아역 배우 윤시영• 박미유, 리틀 가스파드 역 연정흠• 윤우영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평균 객석 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며 장기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 내년 4월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무대에 오르는 라이센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명성에 절대 뒤지지 않는 후폭풍을 예견하게 만든 뮤지컬이다. 10월 7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컴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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