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BC 스페셜', 김태희를 재발견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사실 김태희가 연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애초부터 연기자를 꿈꾸고 연예계에 발을 디딘 것이 아니었고, 굳이 힘든 연기를 하지 않아도 쇄도하는 광고 모델 일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MBC 스페셜'이 셀러브리티 기획으로 가져온 '태희의 재발견'은 왜 광고 모델로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녀가 6개월씩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장에서 군대생활(?)에 가까운 촬영을 하고, 일주일에 3일 꼬박 잠 한 숨 못자면서도 웃는 얼굴로 연기를 하고, 대역을 써도 될 만한 장면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지, 그 이유를 에둘러 보여주었다.
우리가 광고와 드라마,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김태희와 실제 김태희는 다르다. 주변 연기자 동료들의 진술처럼, 그녀는 남자처럼 털털하고, 일단 일을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려하는 근성을 보이고, 아무리 힘겨운 강행군에도 군말 하나 없이 덤비는 '독종'이다. 학창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자존심 강한 그녀가 연기에 발을 담그고 쏟아진 혹평과 비난은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하듯 연기를 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어디 연기가 공부하듯 되는 것인가. 머리를 쓰는 일과 몸과 감정을 쓰는 일은 다르다.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아마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고의 김태희가 최악의 김태희로 평가받았을 때,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그 자존심. 돈 때문이라면 광고 몇 편이 영화나 드라마 한 편보다 훨씬 수월했을 것이지만, 어디 사람이 돈으로만 사나. 자기 존재의 증명은 누구에게나 삶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는 법이다. 그녀에게 연기는 자기 존재를 다시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미지가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연기자로서 받고 있는 평가(즉 쉽게 돈 번다는 식의)가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것의 증명.
많은 이들이 외모 콤플렉스를 말하지만, 김태희는 연기자의 길을 선택하면서 거꾸로 외모 콤플렉스를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신'의 이미지는 연기자로서는 오히려 독이다. 수많은 다른 삶의 옷을 입어야 하는 연기자의 운명에 '여신'처럼 공고하게 굳어져버린 외모의 이미지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태희가 그 '여신'의 이미지로 공고히 쌓아놓은 최고의 모델로서의 경력은, 연기자의 세계로 들어서면 그녀 스스로 부숴야할 벽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 벽을 향해 온 몸을 던지기를 수차례, '아이리스'를 통해 겨우 그 균열을 발견하게 된 김태희는 조금 편해진 얼굴로 '마이 프린세스'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연기를 하기 위해 맨발로 뛰고 또 뛰어 발톱이 깨지는, 이 혹독한 연기의 세계를 그녀는 왜 고집하게 된 걸까. 많은 이들이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의 자신을 꿈꾼다. 연기는 궁극적으로 그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미지나 정체성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기 마련이다. 그 정체성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관계의 근거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강요된 정체성은 삶의 족쇄가 되기 마련이다. 김태희는 혹 그 족쇄를 연기라는 틀을 통해 깨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델 이미지가 구축한 '여신'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그 족쇄가 그녀를 꽁꽁 묶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보통 사람들에게는 부럽기만 한 일이겠지만 '여신'의 이미지는 연기자로서의 길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오히려 저주의 족쇄가 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 족쇄를 인식하면서 연기의 길을 고집함으로써 김태희는 그 족쇄를 풀어낼 실마리 하나를 잡은 셈이다. 그토록 연기 속에서 자신을 몰아세우며 강행군을 하는 김태희가, 차츰 연기자로서 어떤 새로운 길을 걸을 것이라는 예감이 드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를 자꾸만 옭아매던 바로 그 족쇄 덕분이다.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과정이 그녀에게는 연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신' 김태희는 과연 '연기자' 김태희로 우리 앞에 서게 될 것인가.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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