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디오스타’ 이특의 조언은 과연 맞는 말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라디오스타>의 막내 DJ이자 ‘슈퍼주니어’의 막내인 규현 앞에 슈퍼주니어 멤버 ‘형’들이 찾아왔다. 예능 초보로 대형 프로그램의 MC자리를 꿰찬 막내를 바라보는 형들의 뿌듯함과 걱정 어린 눈빛은 훈훈했다. 그런데 뜻은 이해가 되지만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대목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이특과 규현의 라디오스타 1분 토론이 그것이었다.
이특은 “규현이 <라디오스타>뿐만 아니라 예능에 발 안 담갔으면 좋겠다”며, “노래라는 장기를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규현은 이에 다소 비장한 말투로 “노래를 하기 위해서 예능을 하는 것”이라며 “노래만 잘한다고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아무리 슈퍼주니어 멤버지만 나에겐 무관심이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으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었다”고 반론했다.
이특은 예능 대부인 이경규의 말을 빌려와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어떤 사람들은 예능을 통해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하고 예능을 징검다리처럼 생각하고 들어오지만, 예능을 본격적으로 할 사람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차이가 벌어진다고. 그러니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경규가 까마득한 후배에게 전해준 이 말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격려의 채찍이었겠지만 현재 유통기한이 지난 고어다. 이미 이 판에서 대충하고 나가겠다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능은 연예인들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높게 뛰어줄 가장 확실한 발판이자 그 자체로 가장 커다란 시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 전부터 예능과 코미디는 전혀 다른 분야로 분화됐고,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인 예능에서는 어떤 식의 준비를 한다고 잘 된다는 공식은 없다. 입문의 정석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능이다.
<강심장>이 아닌 다음에야 즐기듯이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야 할 예능에서 목숨을 건 준비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킨다. 조세호, 남창희가 제대 후 합숙까지 하면서 준비를 해온 개그와 에피소드들이 안타까움을 통해 웃음을 만드는 것이 그 예다. 예능은 웃기는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깝고 편하고 친근함이 우선시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이후 예능이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특별한 역할과 지위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연예인의 화장을 지워내 시청자들의 친구라는 유사 친목을 도모 기능에 있다.
규현의 반론은 현재 연예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은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연예계에선 메마른 오아시스를 떠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예능에 출연해 인지도를 쌓으면 국카스텐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선보일 기회를 광폭으로 갖게 된다. 예능은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쇼윈도이자 기회의 창인 것이다.

실제로 예능계에 예능만 하는 전문 예능인은 톱 MC급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방송 삼사의 주말 예능에서 100%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정형돈, 이수근 이외에 거의 없다. 런닝맨의 경우 지석진과 유재석을 제외하면 전원 다른 업을 주전공으로 삼고 있고, <1박2일>도 이수근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다. <청춘불패>와 <불후의 명곡>은 기획부터가 아이돌 위주이고, 이특이 얼마 전까지 출연하기도 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출연자 중에 예능인이라 불릴 사람은 박미선 외에 없다.
예능을 통해 기회를 만든 예는 너무나도 많다.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성모 또한 <출발 드림팀>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GOD 또한 <육아일기>를 통해 국민 아이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실제로 탁재훈, 김종민 등 오래전부터 본업보다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내 가수 생활에 도움을 얻었고, 이제 예능인에 더 가까워진 윤종신, 하하, 김태원, 데프콘 모두 같은 케이스다.
이특이 예능MC를 꿰찬 첫 번째 아이돌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힘든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생에게 했던 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라고 말하는 것도 옳은 조언은 아니다. 또한 이 시장에 필요한 예능 선수는 새로운 캐릭터에 흐름을 파악할 줄 아는 영민한 센스가 있는 인물이지, 예능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가 아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새 인물은 <놀러와>의 김응수와 <정글의 법칙>의 박정철이다. 예능은 늘 이런 새로운 자극과 익히 알던 모습을 깨는 신선한 캐릭터를 반긴다. 그만큼 밀려나가기도 쉽기에 이특의 충고는 이런 이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 번 통했던 캐릭터만 믿고 승부를 보면 정재형처럼 쉽게 질릴 여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규현은 캐릭터나 준비된 코미디를 갖고 웃기는 패널 스타일의 타입이 아니다. 게다가 <라디오스타>는 <강심장>등 기존 스튜디오 예능의 대척점에 서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토크쇼로서 좀 더 MC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는 재목이다.
그런 점에서 슈퍼주니어 멤버간의 돈독한 우애는 잘 알겠지만, 예능을 코미디의 맥을 잇는 특별한 분야로 취급하는 순혈주의는 위험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생각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연예인이라면 가장 큰 플랫폼에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한 전략인 것이다. 이미 가수는 노래만 하면 되고, 배우는 연기만 하면 되며 예능이 예능으로만 끝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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