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음악 대신 과거로 회귀한 눈물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90년대 청춘 송가 ‘눈물’의 가수 리아가 눈물을 흘렸다. X세대의 총아의 상징이었던 ‘개성 강한’ 스타일과 창법으로 혜성과 같이 등장한 그녀가 어느덧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라는 이름부터 비장한 오디션 쇼에 나와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역시나 90년대 청춘을 복고가 아닌 ‘현상’의 위치에 올려놓은 <응답하라 1997>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머릿속 저편에서 끄집어낸 지 불과 얼마 후였다.

<나는 가수다> 등 90년대 청춘의 감성이 다시 들끓어 오르고, <슈퍼스타K>나 <마세코><프런코> 등 스타 혹은 직업인 선발 오디션이 성행하면서 ‘기회’라기보다 ‘서바이벌’의 흥미를 살리는 쪽으로 변형 발전해간 이때 리아를 앞세운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는 관심과 흥미를 충분히 살만했다.

여기서 리아는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의 흥행을 위한 조커 카드였다. 하지만 가장 중량감 떨어지는 심사위원과 가장 중량감 넘치는 참가자가 만난 이 오디션은 음악 대신 과거를 회귀하는 눈물쇼로 이어졌다. 90년대 향수, 연예인의 재기, 한때 프로로 활동했던 이들의 대결인 만큼 높은 음악 수준 등 차별화할 지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프로페셔널한 음향과 무대는 물론, 오디션쇼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경쟁마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안타깝게도 리아가 흘린 눈물은 시청자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지 못했다.

어느덧 기성화된 오디션 프로그램은 열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이른바 눈물서린 감동 스토리보다는 즐기는 모습, 진지하게 파고드는 열정, 참가자의 매력으로 관심의 초점이 변해갔다. 하지만 프로그램명에 쓰인 마지막이라는 결연함 대신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감동을 전달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지름길로 가고자 했다.

여기서 이 쇼의 정체가 흔들리고 의구심이 생긴다. 오디션 쇼는 참가자들 모두 절박한 만큼 그 사이에서 경쟁과 협력, 눈물과 감동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고 감칠맛을 내는 것이 바로 갈등이다. 한 예로 악마의 편집으로 유명한 <슈스케>는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이 합숙을 하는 슈퍼위크를 통해 편집이나 참가자의 매력을 두드러지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넣는다. 그런데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은 아무런 장치도 없이 31명의 참가자 중 조를 짜지 못한 1명이 탈락한다는 조 편성 미션을 선보였다. 마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처럼 참가자들이 알아서 갈등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다.



이 조 편성 미션은 서바이벌 쇼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조 편성 미션 하에서는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기회도 없이 죽어야 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참가자들을 배려해 예선 장면을 과감히 뛰어넘었겠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다가갈 시간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런데 조 편성 미션과 사연 소개는 이런 감정선 또한 그대로 뛰어 넘었다.

오늘날 오디션쇼를 이끌어가는 첫 번째는 역시나 오디션에 임하면서 변해가고 발전해가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사연만으로 캐릭터를 부각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조 편성 미션은 인생 패자부활전이라는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의 포장을 벗겨내고 재능은 물론 사회성에 대해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재능에 혹은 노래에 감정적으로 다가갈 기회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의 매력을 느껴보기도 전에 선입견에 의존하도록 했다.

리아의 눈물은 절절했지만 조 편성을 한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렇게 흩날렸다. 이는 기존 시스템에서 승부가 불가능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오디션쇼의 본질에서도 어긋나는 일이다. 자신의 아픔을 전시한 참가자들에게도 동정 이상의 매력을 부과하기 힘든 구성에 ‘서바이벌’이란 선택의 기로에 밀어 넣는 것은 패자부활전이라는 기획의도와 부합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참여와 감정 개입이 가장 큰 특징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의 존재를 지워버린 꼴이었다.

만약 갈등에서 오는 재미를 부각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더욱 악랄하게 서로서로를 한 번에 지목하게 하는 악취미에 가까운 스릴이라도 있도록 했어야 했다. 어차피 오디션 프로그램은 패자부활을 하기엔 그 태생부터 모두에게 사랑을 주는 박애가 아닌 서바이벌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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