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별자리 스토리] '임하룡은 왜 코미디를 버렸을까.' '승승장구'의 '당신은 왜'라는 코너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임하룡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20년 동안 정상의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그가 10년 째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 하지만 이 질문에 임하룡은 "'버렸다'는 말은 잘못 됐다"고 말했다. 본인은 계속 하고 싶었지만 사실상 자신이 설 무대가 없어졌다는 것. 그는 심지어 '뽀뽀뽀'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도 했다고 했다. 동물 가면까지 써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아마도 임하룡은 자신의 유행어처럼 "이 나이에 내가 하리" 하는 마음을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 코미디언들의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콩트 코미디의 최고 전성기는 아마도 '유머 일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로 이어지는 83년부터 92년까지의 시기일 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이 배출한 코미디언들은 김형곤, 심형래, 임하룡, 김학래, 장두석, 김정식, 양종철, 오재미, 서원섭, 이경래, 이경애 등등. 임하룡은 이 두 프로그램에서 모두 활약한 코미디언이다. 특유의 팀 코미디로 후배들과의 합을 통해 웃음을 주는 임하룡은 어찌 보면 콩트 코미디 시대 코미디언의 전형처럼 보인다. 이들은 모두 짜여진 대본으로 연기를 하는 연기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쇼의 시대가 오면서 콩트 코미디 시대는 저물었다. 당연히 코미디언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저 '유머 일번지'와 '쇼 비디오 자키'의 코미디언들 중 여전히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김학래와 이경애 정도다. 시사풍자 코미디의 대가였던 김형곤과, 임하룡과 종종 합을 맞췄던 불광동 휘발유 양종철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심형래와 임하룡은 영화계로 진출했고, 부채도사 장두석은 요가와 명상 분야로 진출했으며 밥풀떼기 김정식은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사업을 시도하다 실패한 경우도 많다. 무엇이든 해야 하지만 특별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들은 예능의 흐름이 바뀌면서 일시에 무대를 잃었다. 그래서 각자 다른 분야를 개척해 살아가고 있지만, '승승장구'에 출연한 임하룡을 비롯한 엄용수, 이경래, 이경애, 조금산이 보여준 것처럼 천상 코미디언들이다. MC들을 꿰다 논 보릿자루로 만들어버린(?) 것은 그들의 코미디 팀 워크가 여전하다는 증명이다. 조금산이 무작정 멘트를 던지고 얘기가 늘어질 때마다 엄용수가 치고 들어오고, 특유의 과장된 동작을 순간적으로 임하룡이 캐릭터화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경애는 자신의 아픈 개인사를 꺼내서 임하룡이 자신을 끝까지 챙겨줬다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이어 이경래의 사업실패, 조금산의 미국행, 엄용수의 결혼 실패를 싸잡아 얘기하면서 침잠한 분위기를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임하룡이 펼쳐놓은 마당 위에 후배 개그맨들이 맘껏 뛰어노는 그 광경이 흐뭇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가 이렇게 짧은 시간 속에 그것도 추억으로 그려지는 것은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다가도, "예능이 즐거워야 되는데... 미안해."라고 말하는 임하룡에게는 여전히 코미디언의 피가 흐른다. 영화판에서 배우로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그 욕구는 여전하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지금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생활과 마주하고 있는 사라져버린 코미디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승장구'에서 임하룡은, 늘 웃음을 주었고 또 여전히 웃고 있지만(그것이 코미디언의 운명이라도 되는 듯!)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정작 자신들은 웃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 코미디언들의 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임하룡은, 아니 그들은 코미디를 버리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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