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딸 서영이>, 신데렐라이야기의 지독한 현실 버전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고학하는 쌍둥이 남매에 입주과외까지 분명 쌍팔년도식 설정인데, <내 딸 서영이>가 묘한 설득력을 주는 것은 알바에 휴학에 대학 다니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이즈음 청춘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존을 위해 동동거리고 악착같이 돈을 버는 메마르고 강퍅한 여자주인공 이서영(이보영)은 현재적이기보다는 과거형에 가까워보인다.

말하자면 서영은 20년 전 <아들과 딸>의 후남(김희애)과 같은 꼴이다. 후남과 귀남(최수종)이라는 쌍둥이 남매는 이제 서영과 상우(박해진)로 바뀌었다. 물론 남아선호사상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서영이 후남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공부도 할 수 없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사고치는 아버지 빚 수발에 동생 의대 뒷바라지에 휴학을 밥 먹듯 해야 하는 서영의 처지는 후남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자존심과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성격 역시 비슷하다.

특히 서영이 아버지에 대해 갖는 피해의식과 애증이 동생 상우보다 훨씬 깊은 것을 볼 때, 그녀가 여전히 굳건한 가부장체제의 희생자임은 명확하다. 무능력한 데다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 아버지 삼재(천호진)는 그녀에겐 원망스럽고 부끄러운 존재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로부터 계속 도망치려 하지만, 그럴수록 아비의 존재는 그녀를 더욱 옥죄어온다.

이런 서영에 비하면 강우재(이상윤)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은 사치스러워 보일 정도다. 그는 단지 아버지 기범(최정우)의 회사를 물려받기 싫어서 유학을 하고 영화를 공부한 삐딱한 반항아이다. 그의 반항을 위한 반항은 순식간에 자신을 사로잡은 동생 성재(이정신)의 과외선생 서영을 사랑하게 되면서 바로 철회되고 만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된 드라마는 놀랍게도 매우 빠른 속도로 신데렐라이야기의 핵심적인 갈등으로 돌진한다. 그것도 신데렐라이야기의 가장 현실적인 버전으로. 신데렐라이야기의 가장 현실적인 버전은 신데렐라가 자기 부모를 부정하고 자기 가족을 버리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결혼은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합법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서영이 우재와 우재부모 앞에서 아버지가 안 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드러내놓을 수 없는 아비보다 차라리 고아가 낫다고 생각했을 때, 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다른 무엇보다 그녀의 그 지독한 자격지심 자체가 된다. “고등학교 때부터 과외했어요. 대구 부잣집 아이들, 서울에선 강남에서 조금 산다 하는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미달되는 사람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하는지,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하는지, 돈이 권력이고 계급인데, 나 같은 애를 허락을 해요?”



그녀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지지한 부모보다 차라리 고아인 것이 부잣집 사람들에게 잘 먹힌다는 것을 이미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비를 버린 행위’는 그녀가 아버지라는 존재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라는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는 온전한 존재 이전은 불가능한 것이다. 가족이 계급이고, 계급이 곧 존재이자 정체성이다.

비극은 예정된 것이다. 서영이 아버지를 버리는 순간, 그녀는 그토록 사랑하는 쌍둥이 동생 상우마저 잃어버린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존재 기반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미 자기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모멸과 굴욕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서영의 실수는 아버지가 없다고 거짓말하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재에게 마음을 열어버린, 그래서 그에게 마음을 들켜버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있다. 실수는 바로 자존심 하나로 꼿꼿하고 뻣뻣하게 버텨온 서영이 자신을 “집밥 먹게 하고 싶고, 푹 재우고 싶고, 스트레스 풀면서 웃게 하고 싶은” 우재의 가진 자의 연민과 배려에 넘어간 것에 있다. 서영은 이미 가진 자들로부터의 멸시와 모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가족의 굴레는 서영에게나 우재에게나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바꾸고 갈아치워도 부모와 형제를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두 사람의 계급적 간극은 우재가 서영의 거짓말을 결코 온전히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만큼일 것이다. 가족과 계급의 깊고 깊은 상관관계는 이 뻔한 신데렐라이야기를 매우 현실적인 버전으로 만들어 준다. 이 지긋지긋하게 고전적인 주제는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더욱 지긋지긋하다.

이제 남은 것은 서영이 느껴야할 더욱 처절한 모멸과 굴욕이다. 앞으로 밝혀질 그녀가 내뱉은 거짓말은 드러나는 그녀의 아비만큼이나 그녀를 치욕스럽게 만들 것이다. 열쇠는 우울하게도 다시 우재의 손에 달려 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자신이 서영을 통해 타인의 존재, 타인의 삶에 눈뜨게 됐다는 우재의 고백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것인가. 그의 사랑은 위기에 빠진 서영을 구원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신데렐라는 신데렐라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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