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희, 추락하는 <우결>에 날개를 달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결혼했어요4>의 상승 곡선이 심상치 않다. 올 여름까지만 해도 운명이 다했음에도 개발한 포맷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시즌제를 도입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비아냥을 들었던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상현실이란 틀이 무너진 상황에서 설렘을 주조하는 방식과 미션이란 게 매번 반복되니 소꿉장난 같은 부부놀이에 시청자들은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은 지 꽤 됐다. 하지만 <우결>은 버티고 기다리면서 도약을 이뤄냈다. 최근 예능계의 여러 새로운 시도들이 신통찮은 이때, <우결>의 부활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우결>은 ‘우결 마을’이라는 공동체 도입과 조화로운 캐스팅의 힘으로 반전을 이뤄냈다. 예능으로 단련된 황광희와 한선화, 드라마를 통해 최근 인지도가 급상승한 윤세아와 오연서, 호감형 훈남인 줄리엔 강과 이준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세 커플은 삼각대의 다리처럼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한 마을에 이웃으로 지낸다는 설정은 커플간에도 얽히고설키는 스토리를 만들어내 예전과는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냈다.

큰 형님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줄리엔 강과 윤세아는 가장 연장자답게 배려심 깊은 커플의 로맨틱한 매력을, 이준과 오연서는 천진한 남자와 기센 여자의 조합에다 집착과 질투로 대변되는 독특한 코드를, 황광희와 한선화는 능히 성공한 조권과 가인의 계보를 잇는 알콩달콩한 귀여운 커플의 모습으로 각자 사랑스런 커플의 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우결4>의 포인트는 이 커플들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한의원에도 가고 가로수길에서 이벤트도 하고 갯벌 데이트를 즐기는 등 실제 많은 분량을 커플간의 사랑 쌓기에 할애하지만 재미는 거기서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리막을 걸어온 <우결>의 몰락은 설렘에 천착하면서 시작됐다. 이미 사랑에 대한 낭만에서 속물적인 판단까지 아낌없이 드러내고 실제로 결혼까지 하는 <짝>이 성황리에 방송 중이고, 연예인간 부부라는 가상의 허울이 아닌 아이돌간의 연애라는 현실의 조건을 내세운 <더 로맨틱>이 방송을 시작한 이 마당에, 이런 감수성으로는 더 이상 승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결4>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된 진정한 이유는 설렘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예능을 품은 데 있다. 낭만 바이러스를 발산하는 데 집중했던 힘을 ‘우결 마을’ 이야기로 넓히면서 <우결>의 재미는 살아난 것이다. 예전 <우결>이 풋풋한 설렘부터 시작해 조심스럽게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연애 감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면 이번 시즌은 우결 마을 도입과 광희의 존재로 인해 ‘예능’이 최고의 덕목이 된 것이다. 이른바 가상현실이 리얼 버라이어티화가 된 것이다.



남자들끼리 모여 부인들 이야기를 하고 여자들끼리 모여서 남편 수다를 떨고, 또 부부로 나뉘면 커플들끼리 경쟁하고 질투하는 과정에서 커플간의 감정은 물론 가상부부 사이의 친밀도가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시청자 입장에서는 출연진들의 캐릭터가 잡혀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고, 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토리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을 반상회라든지, 바비큐 파티, 자장면 면발을 흘린 범인 찾기를 비롯해 지난 주 세 커플이 다 같이 모여 김장하는 에피소드까지 함께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보는듯했다.

여기서 광희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광희는 우결 마을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스스로 웃음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멤버이며, 여러 분탕에 가까운 그의 활달한 행동에 의해 사건이나 대화가 피어난다. 광희는 <정글의 법칙>의 까불이 막내 이미지, 제2의 붐이나 조권 등 싼티 캐릭터의 후발주자로 한정되었던 자신의 역량이 사실 더 큰 롤을 해낼 수 있는 수준임을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특히나 시도 때도 없이 실제 아이돌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오는 수다와 활력은 시청자들이 이 가상 버라이어티에 훨씬 더 몰입하기 쉽게 만들었다. 척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망가져버린 가상부부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광희와 선화 커플은 예측불허의 대화를 통해 가상현실로서의 부부라는 틀을 지키기 위해 쏟아냈던 오글거리는 여러 구태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캐스팅의 비화부터 시작해 부부로 연을 맺기 전 아이돌 세계의 뒷이야기를 마치 카메라 앞에 수다 떨듯이 옮겨오면서, 시청자들에게 이 방송은 가짜지만 정말 재밌게 놀듯이 지내고 있고 어쩌면 우리는 진짜라는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내보낸다.



지난 이특·강소라 부부 편에서 진짜 소개팅이 아닌 것을 모두가 뻔히 아는 데도 실제인 것처럼 설레는 장면과 비교해보면 위태로울 법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짜 같다는 몰입을 선사한다. <라디오스타>에서 광희가 실제로 대쉬하는 것 같다는 선화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정하고 뻔히 드러내는 것을 통해 오히려 설렘을 발산했던 앞선 커플들보다 이들의 앞날이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우결>은 그동안 세월의 흐름을 거부했다. 알렉스의 로맨틱한 밥상이나, 서인영이 보여준 신상 여성상을 보여주던 그때의 재미를 매년 반복했으니 말이다. 이에 한계에 다다른 데이트의 재미를 넘어서고자 우결 마을을 도입했고, 여기에 활력 넘치는 예능 친화형 아이돌 광희의 존재가 얹어지면서 한순간에 캐릭터와 성장의 스토리로 운용되는 일종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됐다.

새로운 기회는 연애보다 예능을 취하면서 생겨났다. 그래서 <우결>을 통해 실제 커플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지금 출연진들은 예전 알렉스나 서인영이 그랬던 것처럼, 조권이나 가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세 커플 모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점이다. 특히 차세대 예능 선수인 광희에게 있어 이번 결혼은 <정글의 법칙>에서 못다 이룬 확실한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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