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키 김, 어떻게 예능계 최고 조력자가 됐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의 원톱 프로그램이다. 이견이 없다. 베어 그릴스가 영국 특수부대SAS에서 배운 생존 스킬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면 김병만은 촌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응용한 생존법과 적응력으로 보는 이들을 놀랍게 한다. 시베리아에서 함께한 이태곤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고 감탄사를 흘리게 되는 것처럼 그의 생존 능력은 이미 ‘병만 형이면 다 해낼 거야’ ‘병만느님이 알아서 다해주실 거야’와 같은 전폭적인 신뢰와 놀라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부족원들을 위해 솔선수범과 희생이란 유니폼을 입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글의 법칙>이 예능이란 테두리에서 봤을 때 가장 특이한 점은 김병만이 정말 옛날 시골의 어느 가장들처럼 일만 열심히 한다는 데 있다. 중심을 잡아주는 앵커로서의 MC 역할을 하지 않는 데도 모두가 다 알아서 따라오고, 알아서 함께 즐거움과 웃음까지 만들어낸다. 이것이 김병만과 <정글의 법칙>의 힘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등식이 성립하는 데에는 또 한 가지의 상수가 존재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며 부족원들을 보살피는 리키 김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정글의 법칙>을 통해 호감도와 지명도가 가장 많이 올라간 인물은 단연 리키 김이다. 리키 김은 <정글의 법칙> 출연 전까지는 줄리엔 강과 마찬가지로 훤칠한 외모의 혼혈 연예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2010년 SBS 드라마 <제중원>에서 조선 백성을 위해 의술을 펼치는 헤론 원장 역으로 열연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았으나 다니엘 헤니만큼 뜨지는 못했다.
그러던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왕년에 이상인, 조성모 등이 운동신경을 만천하에 뽐냈었던 <출발드림팀>이었다. 지난 주 방송된 ‘기록의 사나이들’ 편에서 그는 장애물 경기 18번째 우승(통산 25승)을 거두며 드림팀의 진정한 에이스임을 입증했다. 허나 알다시피,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캐릭터가 아니라 몸이다. 그러니 연예계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꼽히긴 했지만 운동신경 좋은 훤칠한 방송인 이상의 임팩트를 시청자들에게 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회는 이어졌다. 어려서부터 여러 운동을 섭렵하며 단련한 탁월한 운동능력은 리키 김을 <정글의 법칙>과 인연을 닿게 했다. 물론, 그의 합류는 큰 뉴스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출발드림팀>의 에이스와 병만 족장의 만남은 순조롭지 않았다. 첫 여행지였던 나미비아에서는 고집이 세고 승부욕이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불화를 겪었다. 하지만 함께해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을 체득해나가면서 리키 김은 자신을 낮추기 시작했다. 가장 의리 있고 믿음직하며 그의 존재 자체로 다른 부족원들이 한 단계 성장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이른바 고투가이(go-to-guy) 캐릭터가 됐다.
사실, 함께 살아내야 하는 병만 족이라고는 하지만 이 하와이안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김병만이 먹여 살려야 할 식솔이거나 손님이었다. 생존과 방송이란 커다란 짐을 어깨에 짊어진 김병만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을 때, 그의 어깨의 드리워진 짐의 무게를 반으로 덜어준 이가 바로 리키 김이었다. 족장 김병만과 함께 유일한 원년멤버로서 부족장이라 불리는 리키 김은 멤버들은 물론, 생존 전선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병만 족장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어느새 그는 김병만만큼이나 <정글의 법칙>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캐릭터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바누아투에서 제작진이 탄 보트가 뒤집혔을 때 가장 먼저 뛰어들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김병만과 함께 항상 위험하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하지만 그는 빛날 수 있는 자리는 양보하는 미덕을 갖췄다. 추성훈이나 이태곤 같은 남성성이 강한 게스트와 함께할 때는 균형을 잡는 무게 추 역할을 하며 특유의 긴장관계를 좋은 에너지로 바꾸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의욕이 앞서는 추성훈의 곁에서 보조를 맞추며 웃음을 만들어냈던 것도 리키 김이었다.

무엇보다 리키 김이 사랑을 받는 건 항상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자세 때문이다. 그는 짜증을 내거나 몸을 사리는 등 다른 부족원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감정 표현과 싫은 내색은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바누아투에서는 부인의 친구이기도 한 박시은과 막내 광희를 보살폈고, 부상을 당한 시베리아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행군에 있어서는 언제나 일행의 뒤를 책임지고, 사냥과 사역에 있어서는 일선에 나선다. 젠틀하면서도 다정하고 이타적인 태도에다 외모까지 받쳐주니 아무리 PD보다 나서지 않아도 자연스레 돋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감이었다. 시청자들은 이런 리키 김에게서 김병만과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과 정신력을 갖춘 또 다른 리더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다보니 제작진도 마다가스카르 편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리키 김의 가치를 집중 조명했다. 겁 없고 활발한 전혜빈이 힘들어할 때, 또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에 우울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누구나 힘들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응원을 해주는 든든한 오빠이자 동료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조명했다. 부족원들을 위해 바다낚시를 나섰다가 외딴 섬에 고립되었을 때는 출연 연기자의 입장을 넘어서 제작진을 포함한 팀원을 책임지고 챙기는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추켜세웠다. 특히 이 방송분은 리키 김의 다음번 <정글의 법칙> 하차설과 불참 뉴스가 한창 뜨거울 때 나온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리키 김은 예능에서 유머 감각이나 눈물을 자극하는 에피소드 없이 인간성만으로 호감을 만든 몇 안 되는 케이스다. <정글의 법칙>이 따뜻할 수 있었던 것, 김병만이라는 우산이 잘 펴지도록 리키 김이 튼튼한 우산대가 되어 받쳐주고, 그 아래에서 나머지 부족원들을 잘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예능 형식의 진행은 하지 않고 솔선수범형 노동에 탐닉하는 김병만의 곁에서 리키 김이 링크이자 완충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인자니 쩜오니 하는 예능계의 관용어구가 있지만 <정글의 법칙>에서 리키 김은 대체 불가능한 조력자다. 그는 병만족의 오지체험에 있어서는 완성형 인간성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정글의 법칙2>가 막을 내리자마자 벌써부터 아쉬움이 밀려온다. 잘 맞물린 쐐기와 같았던 병만 족을 볼 수 없다니 말이다. 아직 리키 김이 없는 병만 족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부족장이 없는 병만 족이라니 기대감 한편으로 벌써부터 허전함이 밀려온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리키 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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