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돌아온 김병만, 그가 아예 대체 불가능한 이유
-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예능 개척자, 김병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글의 법칙3>이 시청률이 15%로 돌아왔다. 같은 시간대에 한창 몰입을 더해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K팝을 앞세운 연말 가요축제와 경쟁한 가운데 내린 성과다. 시청자들은 오디션과 경쟁보다, 한 해를 정리하는 버라이어티한 무대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난 병만족의 등장에 더 큰 반응을 보였다.
<정글의 법칙> 시리즈가 다소 어수선한 연말연시에 첫발을 내딛고도 호성적을 거둔 것은 편성 의도의 여하를 떠나 의미 있는 결과다. 지나간 한해를 돌이켜보며 새로운 내일을 바라봐야 할 시기에 등장한 <정글의 법칙3>는 앞으로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져야 할 특징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예능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해 성공한 사례인 것이다. 즉, <정글의 법칙3>는 1996년 시작된 ‘양심 냉장고’나 2001년 첫 방영된 <느낌표>처럼 예능의 가치와 재미가 ‘웃음’만이 아니라 ‘시대상을 반영한 감성과 정서’를 어루만져 주는 데서도 나오는 시대가 또 다시 도래할 수 있음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첫발자국이었다.
<정글의 법칙> 시리즈가 담고 있는 정서는 우연찮게 원더랜드로 떠나게 된 성장한 피터팬이 등장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후크>(1991)와 비슷하다. 떠나야만 만나게 되는 새로운 세계를 통해 환상과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곳이 비롯 원더랜드가 아닌 정글일지라도 말이다. <정글의 법칙>에서 떠나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첫 회에서는 항상 짐을 싸는 모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음 장면은 바로 공항으로 이어진다. 짐 싸기는 여행에 있어 가장 두근거리는 행위이며 공항은 일상 탈출의 희열이 가장 충만한 장소다.
새로 합류한 박솔미가 기대 반 걱정 반의 흥분 속에 짐을 싸고, 김병만을 비롯한 멤버들이 스쿠버다이빙 기초 강습을 받으며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짐을 짊어지고 모인 공항에서 환영인파에 둘러싸여 촬영한 오프닝을 한다. 매 시즌마다 반복되는 이 장면은 정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시청자들을 들뜨게 만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떠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정글은, 김병만의 말대로 서울(이곳)에서의 고민을 내려놓고 살 수 있는 장소다. 병만족에게 정글은 생존의 사활을 건 고된 모험의 세계인 동시에 새로운 기준과 능력과 방식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다. 그런데 그런 병만족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흥분을 느낀다. 그들이 떠나온 곳이 단지 여유로운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란 잊었던 본능적 가치를 깨닫게 하는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생존이란 단순명료한 미션은 복잡다난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매우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가치다. 어깨를 짓누르는 불안한 경제사정과 여러 가지 고민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의 무게, 꿈이나 자존감과 밥벌이 사이에서 괴리된 전쟁 같은 현실에서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직관적인 메시지를 건네는 주문이다. <정글의 법칙> 시청이라는 간접체험을 통해 상상할 기회를 얻고, 현실 사회에서는 희미해졌던 자존감과 목적의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글의 법칙>은 우리가 살던 문명사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의 오지로 떠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생존이란 퇴화된 본능을 자극한다. 먹고 자는 것 등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미션이 되는 삶.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요소다. 이는 곧, 제약이 가득한 현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존의 희망을 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그래서 지켜보고 상상만 하는 것으로 독소가 해소되는 것이다.
이런 정서를 통해 <정글의 법칙> 시리즈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모험의 세계, 새로운 볼거리와 경험을 느낄 수 있는 세계로 초대한다. 사실상 캐릭터 형성이나 스토리라인 구성에 실패한 <정글의 법칙W> 마저도 매회 1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웃음을 넘어서서, 떠나고 싶은 욕망이 주는 재미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병만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그래서 정글에서만큼은 알맞지 않다. 김병만은 지금 발붙이고 있는 자리를 떠나서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해나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것은 희망처럼 강력한 동경을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서 생존이 아닌 웃음이 주가 된다면, 이국적인 풍광을 담은 단순한 해외 로케 쇼가 되고 말 것이다.
김병만이라는 <개그 콘서트>의 대표 멤버가 작년에 이어 SBS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2회 연속 수상하게 된 것은 고생을 많이 했다기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떠나고 싶은 욕망을 예능이란 틀에서 잘 소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정서를 실현해주는 유일한 예능인이기 때문이다.
굳이 <힐링캠프>나 차인표, 혜민 스님, 박찬호가 출연한 파일럿 쇼 <땡큐>처럼 직접적이지 않아도 예능이란 틀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희망과 위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정글의 법칙> 시리즈가 그러한 길을 걷고 있다. 김병만은 ‘예능은 곧 웃음이다’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예능이란 개념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개척자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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