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그 때 그 이야기] 재키 쿠건은 무성 영화 시절 가장 유명한 아역 스타였다. 지금 그의 영화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찰리 채플린의 고전 [키드] 한 편 만으로도 그는 영원히 기억될 자격이 있다. 채플린의 영화에서 방랑자 캐릭터와 일대일로 맞먹을 수 있었던 배우는 [키드]의 재키 쿠건과 [모던 타임즈]의 폴렛 고다르 두 사람밖에 없다.

많은 아역배우들이 그렇듯, 재키 쿠건의 성장기는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그는 10살 때 군사학교에 들어갔고, 나중에 나이가 든 뒤로는 여러 대학을 전전하다가 결국 학업을 포기했다. 그러는 동안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친한 친구가 돈을 노린 납치범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23살이었던 1938년 4월 11일, 그는, 그가 아역배우였을 때 벌어들인 돈을 멋대로 탕진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를 고소한다.

결론만 말한다면, 그 고소를 통해 그가 되찾을 수 있었던 돈은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소위 Coogan Act 또는 Coogan Bill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아역배우 권리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법은 법원에 의한 계약승인과 금융기관에 의한 소득관리 등과 같은 제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곧장 말해, 부모들이 멋대로 아이들이 번 돈을 빼돌리거나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역사적인 소송 이후, 재키 쿠건은 이전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비교적 생산적인 삶을 살았다. 잠시나마 베티 그레이블의 남편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글라이더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이후로는 성격파 배우가 되어 주로 텔레비전에서 활약했는데, 그중에는 [애덤스 패밀리]의 패스터 아저씨 역이 가장 유명하다.

http://youtu.be/feiizTGg54I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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