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이종석·김우빈의 아주 특별한 사랑
- 아무리 참담해도 ‘학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학교2013>에서 멜로를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에 기대됐던 고남순(이종석)과 송하경(박세영)도 아니고, 정인재(장나라)와 강세찬(최다니엘)도 아니다. 바로 고남순과 박흥수(김우빈)의 길고도 질긴 사랑이다. 청소년기 남자 아이들 사이의 사랑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칠거나 미숙하기 십상이고 불행히 자주 폭력으로 나아간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왜곡된 방식이 바로 폭력이다. 그것은 비뚤어지고 참혹하지만 그만큼 간절한 것이기도 하다. 근래 가장 인상적인 한국 영화 <파수꾼>(2011, 윤성현 감독)이 보여준 것이 바로 그러한 사랑을 갈구하는 폭력이 낳은 비극이다. 말하자면 <파수꾼>은 남순과 흥수의 꼬이고 뒤틀렸던 전사(前史)에 해당할 것이다. 폭력에 휩쓸리는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남순과 흥수는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을 받는 방법을 몰랐던 거고, 무엇보다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들은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 일짱인 남순이 축구선수의 꿈을 위해 일진을 탈퇴하려는 흥수를 폭행했던 것은 흥수가 남순 자신 대신 축구를 선택했다는 것, 남순 자신보다 축구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축구선수가 되려는 흥수의 꿈을 좌절시키고, 서로 끔찍하게 좋아했던 흥수와 남순을 처절하게 갈라놓았다.

그러나 다행히 남순과 흥수는 늦게나마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파수꾼>의 주인공 기태(이제훈)가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우리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보고 서로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런 기회, 그런 가능성이 만들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학교라는 공간에서이다. 그것은 강제전학의 반복과 보호관찰 속에서도 흥수가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밥만 먹고 잠만 자더라도 남순이 학교에 몸을 의탁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질서와 위계와 순응의 규율로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길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역으로 아이들이 그 안에서 스스로 성장해가고 단련해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운 좋으면 이런 아이들을 끝까지 보듬어주는 정인재 같은 교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순과 흥수는 아주 힘겹게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대화하는 법을 익히고 소통하는 법을 배워간다. 자주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말과 눈빛이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씩 서서히, 느릿느릿하고 투박하게.

남순과 흥수는 서로를 향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쑥스럽고 두렵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들이 온전히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망설인다. 남순은 흥수의 꿈과 미래를 망쳤다는 죄책감으로 흥수를 보는 것이 괴롭고, 흥수는 남순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남순이 자신을 보며 갖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차츰 자신들의 숨은 마음 한 자락씩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남순이 자진해서 자퇴서를 냈을 때, 남순에게 자신의 미래를 망친 대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걸 버리라고 소리쳤던 흥수는 말한다. “고작 학교냐? 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내가 버린 건 학교가 아니라, 너다 새끼야.” 그제야 남순은 흥수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그렇게 힘겹게 고백한다.

흥수 역시 모진 말로 남순을 몰아세우고 가차 없이 내쳐왔지만 남순이 동네 양아치들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했을 땐 결국 모른 채 하지 못하고 뛰어들어 같이 행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흥수는 남순에게 깊은 원망과 사랑을 토로한다. “나한테 축구 말고는 너밖에 없었는데, 축구 날리고 죽고 싶었을 때 너라도 그냥 있었어야지.” 흥수는 남순이 자신의 미래를 망쳤다는 사실보다 그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에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남순과 흥수가 화해에 이르는 시간 동안, 그들이 과거의 과오와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그 시간 동안, 그들이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남순은 영우(김창환)라는 존재를 알아봐주고, 민기(최창엽)나 하경의 고통도 헤아려줌으로써 그들에게 자신들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순과 흥수는 지훈(이지훈)과 이경(이이경), 정호(곽정욱)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물론 남순과 흥수가 정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른 길로 계도하고 훈계하는 방식이 아니다. 정인재 선생님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점차 강세찬 선생님이 그렇게 변해가듯이, 단지 관심을 가져주고 사고 뒤처리를 해주고 학교에 나오도록 애쓰는 것뿐이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잖아요. 학교에 오면 밥은 주니까. 다른 애들하고 똑같은 걸로.” 남순이 정호가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최소한의 관심과 보살핌, 이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고 그것만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남순과 흥수, 정인재와 강세찬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비록 그 변화가 미미하고 혹은 헛된 것일지라도, 지금의 참담한 학교 현실에서 그것이 비록 판타지로 보일지라도, <학교2013>이 끝내 희망을 놓지 않은 것은 그들이 우리의 아이들이고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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